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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옌
에리옌
  • 최승우
  • 승인 2022.08.14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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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타고드 오손보독 지음 | 한유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539쪽

“이 시대엔 살인만 아니면
뭘 해서 돈을 벌든 다 괜찮아”

역사 천착에서 현실 성찰로 전환한 내몽골 대표 작품
분단의 현장인 내몽골 국경도시 ‘에리옌’
그에 얽힌 욕망과 소시민들의 이야기

‘초원의 향수와 거시적인 해방 투쟁의 역사’가 주된 소재였던 몽골 문단에서 당대 현실을 성찰한 소설을 발표하며 내몽골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가 항타고드 오손보독의 장편소설 『에리옌』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77번으로 출간되었다. 『에리옌』은 1990년대 말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국경도시 에리옌에서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에리옌’은 북쪽으로 몽골국과 국경을 접하고, 베이징(중국)에서 울란바타르(몽골국), 모스크바(러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철도가 지나며 몽골과 중국 간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작은 국경도시다.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로 에리옌의 시민들은 온갖 혼란과 부조리, 불의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년 시인 숨베르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애인 아리오나를 따라 고비사막 중앙에 자리 잡은 국경도시 에리옌에 오지만, 그에게 에리옌은 파렴치한 거짓말과 속임수, 혼란으로 얼룩진 낯선 세상이다. 숨베르가 어렵게 구한 장사 밑천은 애인의 아버지가 탕진해버리고, 애인의 어머니 역시 숨베르 친구의 물건을 뻔뻔하게 빼돌려 이득을 챙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숨베르는 결국 애인의 집에서 쫓겨난다.

가족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에리옌에 온 지 3년째인 철멍은 체육대학에 들어가 유명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천대받는 삼륜거꾼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순수하던 철멍은 ‘에리옌식’으로 변해간다. 작가 오손보독은 당대의 몽골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그동안 내몽골 문학의 주류였던 역사소설과 차별화되는 참신함을 선보였다. 몽골 소설 하면 떠오르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대신에, 다양한 계층의 ‘현대 도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내몽골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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