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9:35 (목)
징비록
징비록
  • 최승우
  • 승인 2022.08.14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성룡 지음 | 장준호 옮김 | 아르테(arte) | 368쪽

CA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란의 잿더미 속에서 유성룡이 직접 쓴 책이다. 유성룡은 이 책으로 반대파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징비록』이 임진왜란에 관한 대단히 귀중한 사료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징비(懲毖, 지난 잘못과 비리를 경계하여 삼감)’를 위해 지나간 전쟁을 되돌아보며 쓴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젊은 사학자 장준호가 번역한 이번 판본은 기존에 나온 번역본들과 궤를 달리한다. 우선 본권 분량을 뛰어넘는 해설은 깨알 같은 분석으로 징비록을 흥미진진한 영화처럼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 보인다. 임진왜란 전후(前後) 중국과 일본,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기술해 전쟁의 발발 원인과 경과, 전쟁 후 동아시아 역학의 변화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고전’ 『징비록』을 현대판 전쟁 서사극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원전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유성룡의 집필 의도를 간파하여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그의 불행했던 가족사를 드러내 저술가로서의 유성룡뿐 아니라 시대를 짊어지고 고민하는 지성인의 고뇌를 풀어냄으로써 지금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징비록』은 편년체로 쓰인 기록물로 지금까지 나온 구간들이 시간적 기술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원인과 결과를 재구성하는 번역자의 해설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책에는 유성룡이 함께 저술한 『녹후잡기』 또한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두 저작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목에는 ‘잡기’라는 말을 붙였지만 그 이상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 저작에 대해 이토록 상세히 그 의의를 되살리는 번역은 일찍이 없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오랜 격언처럼 낡은 글이라 치부해 버리는 ‘고전’을 현대인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만들어 놓은 장준호 번역·해설의 『징비록』은 앞으로 나올 고전들도 겁내지 않고 편안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일본과의 관계에서 긴 시간 동안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도 번역서이자 해설서인 이 책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고전을 대해야 하는 태도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응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영원한 ‘처세’를 제시하는 책이고,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징비록』은 그런 의미에서 답답한 현재 상황을 풀어줄 물꼬가 될 수도 있겠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