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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문명의 통로, 연행로를 걷다
600년 문명의 통로, 연행로를 걷다
  • 최승우
  • 승인 2022.08.1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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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지음 | 한양대학교출판부 | 640쪽

이 책은 연행로(燕行路)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행로란 무엇인가? 연행에 이용했던 길이다. 연행은 뭘까?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 연경에 간다는 뜻이다. 연경은 어디인가?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 즉 오늘날의 북경 지역이다. 연경엔 누가 언제 왜 갔을까? 근대 이전 외교는 사행으로 실천되었고, 원명청 시기 그들의 수도가 지금의 북경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사신이 파견되었다. 하여 연경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람을 연행사(燕行使),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 연행로는 오랜 세월 사행로이자 교역로였으며 문명로였다. 군사로였고 망명로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 오랜 길을 찾아 나서고, 그 길을 걷고, 거기 서서 옛 사연을 떠올린 사연들이 담겨 있다.

연행의 역사는, 원나라의 북경 도읍 시점인 1267년부터 1894년까지 셈하면 627년이 된다. 여기서 그 사이 남경 사행이 이루어진 53년을 빼면 574년이 남는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 이전의 국제관계, 그리고 기록만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그 이후의 한중관계 속 북경과의 교류를 고려하면, 연행의 역사는 단순 수치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이 관계는 일종의 운명이다. 그 길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무슨 사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런 몇몇 질문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다. 이 답변은 나아가, 앞으로 연행로를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순전히 옛길에 대한 고증이다. 이 책의 언어는 시종 ‘길’을 넘지 않는다. 정치와 문명을 말하기엔 식견이 모자랐고, 길만 얘기하기에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길이 멀리 이어지다가 사라졌고, 그 위에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홀린 듯이 그 흔적들을 따라나섰다. 현대화 가운데 끊어진 옛길을 이어 붙여도 보았고, 세월 속에서 사라진 길을 끝내 찾지 못해 아쉬움 가득 돌아서기도 했다. 이 책은 그 ‘길’을 다닌 보고서일 뿐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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