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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쟁
철학 논쟁
  • 최승우
  • 승인 2022.08.14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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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데닛·그레그 카루소 지음 |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368쪽

철학자 vs. 철학자, 이것이 진짜 論쟁이다!
“미안하지만 그 예는 당신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않아요.”

두 철학자의 실제 논쟁을 담은 책. 대니얼 데닛과 그레그 카루소가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 대가를 주제로 벌인 격론이 가감 없이 담겼다.
‘논쟁’은 TV 토론, 인터넷 게시판, 서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화의 한 형식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한 없이 끝장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TV 토론의 참여자들은 시청자를 의식하며 말하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학회의 토론장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정해진 이야기를 교환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철학자는 ‘논리’의 전문가다. 철학자는 카메라 앞에서 말을 더듬을지언정 언제나 ‘이성의 빛’을 지향하는 존재며, 논쟁(논리 싸움) 본연의 의미에서 전문가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자와 철학자가 만나 벌이는 ‘진짜 논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논리와 논리가 만나 끝장을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이 책은 실제 철학 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 논쟁을 즐긴 두 철학자가 의기투합해, 시간 제한 없이 끝장을 한번 보자고 마음먹은 결과물이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양립가능하다 vs. 양립불가능하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인슈타인도 하지 않는다?

데닛과 카루소의 출발점은 ‘결정론’이다. 결정론(determinism)은 어떤 시점에서든 오직 하나의 미래만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사건과 자연법칙이 하나의 특정한 미래만을 가져온다고 본다.

결정론적 세계관을 담은 말 중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가 있다. 이는 양자역학의 비결정성을 거부했던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드러내는 언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도 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나는 자유의지를 믿지 않아요. (…) 내 과학적 성과는 틀림없이 정해져 있었어요. 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요인에 의해서요.”
‘세계’에 대해서 결정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듯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나 부모의 눈동자 색 유전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꽤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오늘 어떤 색의 셔츠를 고를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거나 나아가 내 삶 전체가 이미 정해진 트랙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성과가 아인슈타인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쉽지 않다.

데닛과 카루소는 모두 자신을 결정론자로 규정한다. 둘의 차이는 ‘자유의지’에 있다. 데닛은 결정론이 타당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양립가능론자’다. 카루소는 결정론이 타당하며 자유의지는 이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 여기는 ‘양립불가능론자’이자 ‘자유의지회의론자’다. 둘의 논쟁은 여기서 시작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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