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7 04:50 (수)
역사관과 역사학자
역사관과 역사학자
  • 최승우
  • 승인 2022.08.14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동현 지음 | 480쪽 | 북코리아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군부독재가 기승을 떨치던 암울한 시절, 역사란 무엇인가는 판매가 금지된 불온서적이었다. 그래도 386 운동권 세대, 요즘은 ‘586’으로 불리는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이 담긴 이 책을 밤을 새우며 읽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가 1961년에 행한 강연들을 묶어 펴낸 이 책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신념이다. 1980년대 신군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자라난 586의 가슴속에 아무리 독재의 어둠이 짙어도 역사는 반드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는 데 이 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진보’라는 개념도 더 이상 좌파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 탈근대 상황이 벌어졌다. “역사는 진보한다” 외에도 “역사는 과학이다”라는 근대 지상주의(至上主義) 명제를 담고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는 탈근대 역사서술의 집중적인 공격 목표가 되었다. 그 선봉에 선 김기봉은 역사가가 시도하는 ‘과거와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역사가의 상상력을 매개로 하기에 과학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카가 역사서술의 문학적 특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586 운동권 세대의 필독서였던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세상은 움직인다’’이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려 하지만, 젊은이들은 항상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열망을 품는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성전(聖典)처럼 읽었던 586 운동권들이 기성 권력화한 오늘, 민족이나 민중 같은 거대담론에 매몰되지 않은 실용주의 · 합리주의 가치관을 체득한 20대 MZ 세대의 눈에 586 운동권들은 넘어서야 할 장벽으로 비친다.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학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사실 중심의 객관적 역사서술을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시대의 역사인 당대사(contemporaryhistory)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토대이자, 미래의 진로를 비추는 등대다.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 다원적 시민사회는 그들의 피와 땀이 씨앗이 되어 거둔 결실이다. 그들의 삶의 발자취가 담긴 근현대사를 모르고 미래 시대의 앞길을 열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진행형인 역사가들의 충돌하는 역사관의 요체를 황사영백서(黃嗣永席書, 1801), 동학농민봉기(1894~1895), 대한제국(1897~1910), 현행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서술에 보이는 문제점, 그리고 근현대 문명전환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 등을 살펴봄으로써 역사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나름의 관견(管見)을 제시해보려는 데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