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10-04 20:04 (화)
선민의식을 버려야 '자비로운 지도자'
선민의식을 버려야 '자비로운 지도자'
  • 박병기
  • 승인 2022.08.19 10:1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㉓_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고타마 싯타르타. 사진=사르나트 박물관

우리 시대에 지도자의 자격은 태어남으로써 부여받지 못한다. 누구나 시민이 먼저 되어야 하고, 그 시민 중에서 역할에 따라 지도자가 잠시 될 수 있을 뿐이다. 대체로는 임기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이 끝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를 전제로 했던 전통적인 지도자상은 모두 비판과 검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 개념 역시 시민사회적 맥락에서 재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시장과 군수는 목민일 수도 없고 또 그런 선민의식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런 시대에 세계사를 관통해온 대표적인 제도종교의 창시자 중 하나인 고타마 붓다의 리더십을 호출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은 후에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고 가르침을 펼쳤고, 그 가르침의 대상에는 출가수행자들의 공동체인 승가와 재가불자는 물론 이교도들 같은 일반인들까지 포함되었다.

고타마 붓다는 수행을 통해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가 발견한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명제이다. 수많은 인연의 고리가 닿아 형성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바로 그 인연으로 인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는 사실을 명상을 통해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바로 그 진리를 가리키는 자임과 동시에, 죽음에 이른 80세까지 삶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물론 정신적 지도자였지만, 동시에 그 구성원이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승가공동체를 이끈 실질적인 지도자이기도 했다.

“교사는 제자에게 올바로 처신해야 한다. 여기서 올바로 처신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진리 제시와 질의응답, 훈계 등으로 제자를 올바로 보호하고 지도해야 한다. 만약 제자가 병이 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버들가지를 주고, 입을 헹굴 물을 주고 누울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전재성 역주, 『마하박가-율장대품』,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14, 173쪽)

오늘날까지도 상당 부분 남아있는 카스트제도를 넘어서서 모든 계급의 출가를 허용했고 여성에게까지 그 기회를 보장하고자 했던 2500년 전 붓다의 승가공동체는, 말 그대로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갈등의 공동체이기도 했다. 온갖 내부의 불만은 물론 외부의 비난과도 마주해야 했던 붓다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즉각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았고. 그런 이야기들이 잘 담겨있는 경전이 ‘마하박가’, 즉 율장대품이다. 이 율장에는 붓다가 발견하고 깨달은 진리를 전달하는 생생한 현장과 함께,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요한 회의를 잘 하는 방법, 아팠을 때 어떤 약을 먹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와 같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 있는 그의 가르침은 이처럼 일상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어 쉽고 명료하다. 그 핵심은 우리 삶과 그 삶을 함께 꾸려가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럴 수 있게 되면 모든 것들이 얽혀있어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의 진리성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는 자비의 눈길과 손길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는 지도자이기 이전에 시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된다. 붓다의 리더십은 시민과 리더 사이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동등한 인권을 갖춘 인격체이고 다만 임시적인 역할 구분으로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을 뿐임을 자각하는 것이 우리 시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요건이다. 이 요건을 확보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동정이 아닌 자비의 자세로 시민들이 겪는 일상적인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실천할 수 있는 자세와 역량도 갖추어질 수 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윤리학과 도덕교육을 전공하여 서울대에서 「사회윤리의 책임주체 문제」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윤리를 공부했다. 관심 분야는 시민교육과 도덕교육이고, 한국교원대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서영식 2022-08-22 18:51:32
석가모니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 이해를 도모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