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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걸프 지역의 박물관 어벤져스, 이제는 한국이 합류할 시점
[글로컬 오디세이] 걸프 지역의 박물관 어벤져스, 이제는 한국이 합류할 시점
  • 정진한
  • 승인 2022.08.17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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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샤르자 이슬람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알-이드리시의 지구본 모형과 필자. 사진=정진한

두 달 전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문화부 장관 바드르 빈 압둘라 왕자는 SM 엔터테인먼트를 방문해 이수만 회장과 이사인 가수 보아를 만나며 화제를 모았다. 그보다 사흘 앞선 6월 8일, 바드르 장관은 박보균 문체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사우디 역사박물관”을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보아보다 한 살이 많은 이 젊은 장관은 SM에게 사우디의 SPop을 KPop과 같이 키워내기 위해 협력할 것을, 박장관에게는 서울에 한국과 사우디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담은 박물관을 세우자는 구상을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손은 사우디가 우리에게 먼저 내밀었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도 걸프 지역의 박물관으로의 진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때가 되었다. 

최근 걸프 지역 내 국가들은 가히 올림픽처럼 다양한 종목에서 박물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아부다비는 루브르 박물관과 구겐하임 박물관과 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 유치를, 무려 400조를 들여 월드컵을 준비하는 카타르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박물관과 3개의 초대형 박물관을, 사우디는 세계최초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박물관을, 두바이는 미래 세계를 테마로 한 박물관을 선보이는 등 각국은 저마다의 기발한 발상으로 세계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문화 후발국으로 간주돼 온 걸프 지역은 이제 세계 최정상급 박물관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관광지로 부상할 예정이다.

이렇듯 막대한 자금을 박물관 건립에 쏟아붓는 이면에는 탈석유시대를 대비해 세운 국가중장기 미래전략과 그 핵심인 관광 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은 입장료나 부대시설 및 주변 관광시설처럼 직접적인 수익 외에도 막대한 경제적 파생 효과를 유발한다. 일례로 사우디는 지난 7월 국내 각 지역에 10개의 신규 박물관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넷은 이슬람 성지순례 노정 위의 메카, 메디나, 젯다에 설치되어 연간 천만 이상의 성지순례객들의 발걸음을 유도한다. 특히 메카에는 사우디의 5대 권역별 의료 메가 스마트 시티 중 하나가 건설 중이기에 환자 및 보호자들이 성지에서 순례와 의료 및 휴양과 쇼핑 등을 한꺼번에 누리며 장기간 체류하는 복합관광시설을 조성 중이다. 이 성지에 이슬람 테마의 박물관이 들어서면 관광 생태계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 분명하다.

최근 걸프 지역에서 유행하는 또 하나의 전시 테마는 문명교류이다. 이 현상은 좁게는 각국이 역사의 변방에 놓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사의 중심에 세우고자 하는 것이며 넓게는 국가가 추진하는 대외 정책의 주요 기지로서 박물관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두바이에 위치한 문명들의 교차로 박물관의 경우 초창기에는 세계 문명들의 역사적 교류상과 그 속에서 두바이가 차지한 허브로서의 위상 과시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이스라엘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국가 시책에 맞춰 전시의 중심을 중동 내 유대인과 무슬림들의 공존과 화합의 역사로 개편했다. 이 구조조정을 전후로 박물관은 이스라엘과 UAE의 다종다양한 외교 협력의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시류 속에서 한국이 걸프 지역 박물관으로 진출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박물관들은 주로 왕실 보물을 위주로 몇몇 걸프 국가 유물전을 개최한 바 있지만, 반대로 한국 박물관의 해외 진출은 구미와 일본, 호주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물론 인지도나 입장객 수 등에서 걸프 지역 박물관들은 이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걸프의 박물관들은 급성장 중이고, 타지역과 차별화된 강점이 있다. 걸프 지역은 일반 관광 수요뿐 아니라 성지순례라는 고정수요가 있고, 최근 사우디가 관광시장을 개방하면서 규모가 대폭 커졌다. 거기에 EXPO와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를 거듭 유치하면서 인프라와 인지도가 크게 개선됐으며, 세계 최대규모의 환승객들이 적극적으로 공항 바깥으로 나와 관광을 즐기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프 지역은 말 그대로 현대판 문명들의 교차로이기에, 이곳의 박물관들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한국에 대해, 또 한국과 세계의 유구한 인연에 대해 알릴 수 있다. 마침 한국은 걸프 지역 박물관 전시에 걸맞은 세계문명사적 컨텐츠들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지도 중에서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11세기 시칠리아 무슬림 알-이드리시의 세계 지도는 신라의 지형을 묘사하고 이에 관한 설명을 글로 담아 이슬람 세계 곳곳에 한국을 알렸다. 또 이 아랍어 지도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수 세기 동안 유럽 대학에 교재로 쓰이며 유럽 세계에 한국에 관한 지식을 전달했다. 걸프 도처의 박물관이 전시한 이 지도와 지구본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인들은 한국과 이슬람. 또 유럽 사이의 1000년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중세에는 이 지도가 세계에 한국을 소개했다면, 이제는 걸프 지역 박물관을 통해 우리가 세계인에게 한국과 세계의 각별한 관계를 알릴 때가 되었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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