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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행복이 중요하다
소소한 행복이 중요하다
  • 김병희
  • 승인 2022.08.2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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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⑤ 샘터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삼겹살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친구에게 작은 선물을 받는 순간에도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이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에서 소개한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은 이제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저 1970년대 초반에 소확행의 가치를 표방한 월간지가 있다. <샘터>는 행복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소시민 곁에서 50여년의 세월 동안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샘터사의 <샘터> 1974년 1월호 안내 광고(동아일보, 1973. 12. 7.)

샘터사의 <샘터> 1974년 1월호 안내 광고를 보자(동아일보, 1973. 12. 7.). 월간지 광고에서 대체로 목차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듯, 이 광고에서도 비슷한 형식을 따랐다. 그런데 차안, 논둑길, 공장, 참호에서도 샘터를 읽는다고 강조한 점은 다른 월간지 광고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스타일이었다. “샘터는 차안에서도, 논뚝길에서도, 공장에서도 그리고 일선의 참호속에서도 읽혀지고 있읍니다.” 5단 광고에서 맨 위쪽에 별도의 지면을 확보해 판매 메시지를 부각시킨 지혜를 발휘했다. 그리고 월간지 이름 위에는 창간 때부터 써온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라는 슬로건을 배치해, <샘터> 광고에 항상 적용할 디자인 정책을 확정했다.

샘터 창간호 표지

광고에서는 <샘터>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이런 카피로 설명했다. “샘터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더러운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당신의 판단력을 길러주고/ 당신의 인생을 알차게 해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독자의 인생을 알차게 만들어줄 잡지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1974년 1월호에는 호랑이는 호랑이를 먹지 않는다는 「호불끽호(虎不喫虎)」를 쓴 국문학자 양주동 교수나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를 쓴 철학자 최재희 교수를 비롯해, 모두 40명의 호화로운 필진이 기고했다. 그리고 기고하지는 않았지만 명사 6명이 샘터와의 대화에 참여했다.

1974년 1월호에서는 특집을 2개나 준비했다. ‘왜 일을 하는가’라는 첫 번째 특집에서는 일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며 카피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행복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일을 시작하라. 실패한 생애는 대개 그 사람이 전혀 일을 가지지 않았거나, 일이 너무 적었거나, 정당한 일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 이 특집에서는 「국어학의 외곬 길」을 쓴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를 비롯해 8명의 필자가 기고했다.

두 번째 특집은 ‘여자의 꿈’이었는데, 「환상 속의 흑기사」를 쓴 천경자 화가를 비롯해 9명이 참여했다. 이달의 시에는 김현승 시인의 「마음의 새날」이, 콩트에는 소설가 송영의 「신임의 조건」이 실렸다. 나중에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정근모 교수는 「기술유신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썼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옹달샘이 되어준 <샘터>는 1970년 4월에 창간됐다.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창간 당시의 가격은 100원이었고 이 가격 책정의 원칙은 오랫동안 유지됐다. 고 김재순 발행인이 쓴 창간사의 일부는 이렇다.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입니다. (……)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당대의 글쟁이들이 <샘터>가 평범한 사람들의 벗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수필가 피천득,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수녀 이해인, 동화작가 정채봉,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등이 <샘터>의 샘물을 더 맛있게 하며 독자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독자들은 법정의 ‘산방한담’, 이해인의 ‘꽃삽’, 최인호 연재소설 ‘가족’을 특별히 사랑했다.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도 <샘터>의 기자 출신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샘터의 의미를 샘물이 솟아나는 자리로 풀이한다. 샘물이 솟아나는 샘터는 빨래터가 되기도 한다. 샘터에 사람이 모이면 늘 이야기꽃이 피듯, <샘터>는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하루 한쪽 이상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소한 행복이 중요하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소확행의 가치를 알려준 잡지였다.

새벽에 토끼가 찾아오는 옹달샘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 샘터다. 계속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2021년 초에 <샘터>가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독자들의 성원이 답지했다. 그리하여 다시, <샘터>가 창간 51주년 기념호를 기점으로 두 번째 출발을 시작한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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