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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중국민주동맹’, '사람이 목적'인 인권을 주장
근대 중국의 ‘중국민주동맹’, '사람이 목적'인 인권을 주장
  • 최승우
  • 승인 2022.08.3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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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⑰ 김현주 원광대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6일 김현주 원광대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가 「근대 동양에서의 자유: 민권과 국권」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8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의 「자연과학과 자유: 열역학적 자유」, 제19강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의 「동양의 환경철학」, 제20강은 김응빈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의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근대 중국에서 자유주의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 당시의 주장이 지금도 유효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에는 인권 개념이 부재했지만,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서양의 정치 개념과 사상이 전파된 이후, 중국인들도 점차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유신변법운동, 신해혁명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점차 인권 개념이 발달했고, 5·4 신문화운동 시기에는 중국의 인권 사상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근대 중국은 인권 개념이 정착하고 보급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민국 시기 내내 인권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청 말에는 인권이 아니라 민권(民權)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와 평등 등 권리 추구를 위한 운동을 했고,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난 후 비로소 인권과 민권을 구분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정치적 파벌을 통해 인권 운동을 전개했다.

국민당 통치 시기, 국민당 이외에 인권파, 청년당, 민권보장동맹, 국가사회당(나중에 민주 사회당으로 개칭), 제3당(第三黨), 구국회(救國會), 중화직업교육사(職敎社), 향촌건설파, 중국민주동맹(이하 민맹(民盟)), 중국민주건국회(민건(民建)), 중국국민당민주촉진회(민촉(民促)) 등 다양한 정치적 파벌이 존재했다. 이렇듯 항일 전쟁 승리 전후를 본다면, 중국은 정치적으로 다원적인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 자유주의 지식인과 민족 부르주아들이 다수 참여한 민맹은 처음 조직될 당시에는 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을 중간당파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기본 이념은 국민당, 공산당 모두와 차이가 있었다.

김현주 원광대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는 "중국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청 말에는 인권이 아니라 민권(民權)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와 평등 등 권리 추구를 위한 운동을 했고,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난 후 비로소 인권과 민권을 구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특히 민맹의 중도적 입장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권과 국권의 갈등과 결합을 보여준다. 양극단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들은 중국의 대내외적 상황이 절박해짐에 따라 전자를 희생하고 후자로 기울게 되는데, 이것은 곧 자유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후자에 대한 전자의 패배를 초래하게 된다.

쑨원은 사상가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 정치적 상황과 필요에 의해 자신의 인권 개념을 수정해나갔는데, 그것이 국민당과 민국의 인권적 조치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는 루소의 천부인권설을 수용했다. 루소의 공로가 바로 천부인권, 즉 민권의 제창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천부인권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신해혁명을 성공하기 전까지 이러한 천부인권설이 그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이후 쑨원은 새로운 인권설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가 이후 계속해서 강조하게 되는 삼민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권설이었다.

“혁명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인권은 결국은 인권을 제약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쑨원 사망 이후 장제스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이로써 민국 시기 인권이 크게 제약을 받게 됐다. 자유주의자들을 포함한 중간당 파(민맹)는 인권 보장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된 것은 1929년 반포된 국민당의 「보장인권명령(保障人權命令)」이었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 속에 함정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후스(胡適)와 뤄롱지(羅隆基)를 대표로 하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민맹의 주석이었던 장란(張瀾)은 인류가 번영을 추구할 권리는 모든 인간의 ‘천연의 권리(天然權利)’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것으로 자동적이고 자주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1945년 민맹은 임시 전국대표대회 정치 보고에서 ‘사람이 목적’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중간당 파들 대부분이 인간의 본성을 기초로 인권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쑨원 말년의 인권 사상에 대해 반대했다. 쑨원은 혁명당에만 인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혁명의 목적이 인권의 확립이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중간당 파에게 있어서 인권의 확립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인권관은 국가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국가관에 따라 인권관이 달라질 수 있다. 민국 시기 대표적인 국가관에 의하면 국가는 전체 국민의 단체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의 우열은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중간당파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가관 모두에 반대했다. 그들은 공산당이 국가를 계급 투쟁의 도구로 보는 것에도 반대했고, 국민당이 국가를 최종 목적으로 보는 것에도 반대했다. 

이렇듯 명백히 자유주의적이던 민맹의 정치적 성향이 항일 전쟁 승리 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민맹은 영미의 방식이나 소련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에 반대했으며, 정치적 자유, 평등을 경제적 자유와 평등으로 확대 발전하거나, 소련의 경제 민주와 영미의 정치 민주의 결합을 주장하게 됐다. 그것은 ‘제3의 길’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됐는데, 1945년 민맹 임시전국대표대회의 정치보고, 선언과 정강에도 명기됐다. 그리고 서구화의 색채가 농후했다. 소련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인민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며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소련식 모델에는 반대하는 입장이 강했다. 중국 내 경제적 불평등과 비민주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에 대한 국가의 제약을 인정하게 됐다. 즉 정치적 방법으로 경제적 독점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쑨원의 “절제자본(節制資本)”론이나 장제스의 자유주의를 배척했다.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민맹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타협을 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기본권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신체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이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3대 권리라고 생각됐다. 이 세 가지 권리는 선거와 관련 있는 것이었다. 민맹은 선거야말로 민주주의 역사에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봤다.

근대 중국에서 자유주의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 당시의 주장이 지금도 유효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적 강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만 했던 권리가 결국은 권리 전반에 대한 침해를 결과한 것을 보면 오늘날 반복적인 위기의 도래에 직면해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가치 기준이 확립됐다고 보는 많은 서구 선진국들, 그리고 한국에서도 자유주의적 가치들은 언제나 위협받는다. 다시 오늘날 그러한 삶에 대한 전반적 위기와 도전이라는 상황적 강제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자유인가 생존인가의 양자택일은 지금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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