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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우파 운동의 변천사…친미·반공에서 반이슬람·반동성애까지
한국 개신교 우파 운동의 변천사…친미·반공에서 반이슬람·반동성애까지
  • 서명삼
  • 승인 2022.08.3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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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22 ‘지금 여기’에서의 종교와 정치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기존의 냉전 프레임에 문화전쟁 프레임이 중첩되면서 
‘지금 여기’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정치의 만남은 
예전보다 한층 더 복잡해진 형국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축에서 
지속되는 것과 단절된 것을 세밀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섣불리 눈을 돌리기보다는 
한국이라는 지역적 맥락 자체를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과 20여 년 전, 그러니까 2천년대 초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일종의 ‘성역(聖域)’으로 여겨졌다. 일단 종교를 두고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에 너무 큰 위험부담이 따랐다. 당시만 해도 종교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내려면 해당 종교 단체로부터 물리적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이 비교적 부재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러한 담론이 제대로 소통될만한 공론장이 지극히 협소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 전통 내부에서 간혹 자기성찰이 새어나온 것들을 논외로 치면 일반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세속주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풍토에선 종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종교는 종종 신비롭고 초월적인 것으로 취급되거나 정치나 경제에 비해 다소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차적 변수 중 하나로만 다루어지곤 했다. 즉 종교는 이성적 논의 범주 바깥에 속해서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성가신 주제였던 셈이다.

그런데 2천년대 초부터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종교는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2001년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 알카에다가 ‘9·11 사태’를 일으키자 이에 대한 반발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몇몇 동맹국들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해묵은 대립이 한층 더 격화되었고 이때 조성된 긴장관계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선 2002년 발생한 ‘미선·효순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에서 뜻을 모은 청년 세대들이 반전(反戰)·반미(反美)의 구호를 내건 ‘촛불시위’를 개최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는 친미·반공주의라는 냉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보수 개신교 세력과 우파 시민운동 단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펄럭이며 ‘기도회’의 형식을 띤 정치 집회로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성립된 보수 세력의 종교·정치간 연대는 2008년 친기독교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MB 정권의 등장부터 최근 코로나 시국에 있었던 광화문 집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종교 없이 오늘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현실

이 같은 사실들을 복기해보면 이제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반에서 종교라는 주제를 보다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종교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샌가 폭넓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학술장의 변화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주목해온 본 연구자에게 분명 반갑기 그지없는 흐름이다.

종교학이나 신학뿐만 아니라 역사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정치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 속한 일군의 학자들이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종교와 정치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깊은 통찰과 풍부한 참조점을 제공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꺼운 마음과 별도로 21세기 들어 근본주의-복음주의적 개신교가 보수적 사회 운동의 부흥을 선도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한 기존의 연구들을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살짝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부 주제나 방법론에 있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나름대로 이 연구들을 분류해 본다면 크게 역사학적 관점과 지구화적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엔 오늘날 한국의 보수 개신교 세력이 취하고 있는 정치 이념과 정책 선호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이 걸어온 역사적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적 성향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예컨대 1920년대 조선공산당과 기독교 세력간에 있었던 반목이나 20세기 중반 남북분단부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개신교와 공산당 세력 간에 있었던 무력 충돌 등에서 개신교 반공주의의 기원을 찾고자 한다. 

한편 지구화적 관점을 취하는 연구들은 한국의 개신교 우파 운동을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현상에 빗대어 설명하고자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크게 1970~1980년대 들어 근대화와 세계화의 압박에 대한 반발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등장한 근본주의적 종교 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이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기독교 우파 운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사회·정치 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한국의 개신교 우파 운동은 반이슬람과 반동성애라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는 ‘문화전쟁’에까지 그 전선을 확장시켜 왔다. 사진은 지난 2017년 보수 개신교 단체가 주축이 돼 개최한 ‘동성애 반대 국민대회’ 모습이다. 사진=뉴스1

21세기 한국현상을 ‘과거·미국’으로 설명한다면

이러한 논의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기존 연구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지금 여기’, 즉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자꾸 다른 시점이나 다른 장소로 눈을 돌려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일단 시간적인 차원부터 따져보자면, 물론 현재가 완전히 ‘無에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된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그 기원을 포착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설령 역사란 늘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격언에 귀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K.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과거에 일어났던 ‘비극(悲劇)’이 오늘날엔 ‘소극(笑劇)’의 형태로 밖에 재생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소극’을 가리면서 마냥 ‘데자 뷰(d?j? vu)’만 외쳐댈 수는 없다. 비극과 소극의 차이를 분별하고 나아가 전자가 후자로 변환되는 과정과 시대적 조건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공간적인 차원을 고려하자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섣불리 눈을 돌리기보다는 한국이라는 지역적 맥락 자체를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지구화적 관점을 취할 때 자칫하면 한국 종교정치 운동의 ‘원조’는 사실 다른 곳에 있고 ‘여기’서 나타나는 현상은 그것의 ‘아류’ 혹은 일종의 ‘아바타’같이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지역화(glocalization) 관점에서 보면 ‘지구적인 것(the global)’이 여러 지역적 맥락에서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되지만은 않는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 혹은 문화권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피치 못하게 ‘현지화(localization)’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역으로 그렇게 ‘현지화’된 것이 다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점차 ‘지구적인 것’의 모습 자체도 바꾸어질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사례들과 견주어 한국의 개신교 우파를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양자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영향관계를 따질 때도 어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모습보다는 변증법적으로 서로 얽히고설킨 가운데 함께 변화해가는 모습을 고려해야 한다. 

냉전과 문화전쟁 프레임의 교차와 중첩 

이처럼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면, 21세기 한국에서의 종교와 정치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라고 봐야 옳지 싶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주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2천년대 초 한국 보수 개신교가 내세운 친미·반공주의적 메시지에 주목하면서 대체적으로 냉전 프레임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국내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은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들어 한국의 개신교 우파 운동은 냉전주의에 입각한 기존의 정치·사회 운동에 더해 반이슬람과 반동성애라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는 ‘문화전쟁(culture wars)’에까지 점차 그 전선을 확장시켜왔다. 기존의 냉전 프레임에 문화전쟁 프레임이 중첩되면서 ‘지금 여기’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정치의 만남은 예전보다 한층 더 복잡해진 형국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축에서 지속되는 것과 단절된 것을 세밀히 구분하는 한편 공간적 차원에서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들이 굴절되고 변용되는 모습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명삼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교수
종교, 정치 그리고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다양한 양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종교인류사회학자이다.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UC Irvine의 비판적 한국학센터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종교사회학, 세계기독교학, 그리고 기독교인류학에서 발달한 이론과 방법론을 활용해 오늘날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보수정치의 부흥과 그 가운데 종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Social Compass, Religions 그리고 Korea Journal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Transgression in Korea, 『기독교와 세계』, 『코로나19 이후의 교회를 상상하다』 등의 저서에 공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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