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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별’을 찾아서
자기만의 ‘별’을 찾아서
  • 김병희
  • 승인 2022.09.0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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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⑥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추워요. 더 꼭 껴안아주세요.” “지나간 것은 꿈에 불과해.” “술 한 잔 하실래요? 제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영화 「별들의 고향」(1974)에서 시간강사 문오(신성일)와 호스티스 오경아(안인숙)가 나눈 대화들이다. 한국영화사의 명대사로 꼽히는 이 말들은 소설에서 비롯됐다. 작가 최인호(1945~2013)가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동안(1972. 9. 5. ~ 1973. 9. 14.), 어떤 비평가는 이 소설을 호스티스 문학이라고 폄하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작가는 그때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엄청난 주목을 끌었으니 베스트셀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예문관에서 발행한 『별들의 고향』(1973)의 광고를 보자(동아일보, 1973. 10. 1.). 광고에서는 책 제목과 20대 작가의 앳된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예문관의 『별들의 고향』 광고 (동아일보, 1973. 10. 1.)

헤드라인은 이렇다. “독서가를 누비는 탄성! 폭풍 같은 화제- 전국에 비화(飛火)! 물경(勿驚: 놀라지 마세요)! 출간되자 말자 수만부의 예약주문이 쇄도한 슈퍼·베스트셀러!” 그리고 지면 오른쪽에 작가의 수상 이력을 강조하며 이런 카피를 덧붙였다. “압도적인 기대 속에 반세기의 애증을 추적한 현대문학상 수상작가의 야심작!”

책 제목 아래쪽에는 책과 작가를 설명하는 5가지의 추가 정보를 제시했다.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 문장!”, “신문·라디오·TV 등 전 매스컴을 흥분시킨 충격소설!”, “심야 방송의 무드로 되살아나는 한국의 ‘러브 스토리’!”, “동아흥행, 신필림 등 5개 영화사에서 영화화 경합 작렬!”, “저자는 영화화 거부!” 등이다.

자랑거리가 그리도 많았는지 카피 끝에 거의 감탄부호(!)를 붙였다. 느낌표를 너무 많이 붙이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니 광고의 흠결이었다. 반면에 소설에 관한 기사를 쓴 여러 신문의 기사 제목을 그대로 따와 배경 이미지로 차용한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대학가서도 전례 없는 화제로”, “현대인 꿈의 편린(片鱗)… 반체제의 청년 문화”, “겨울 나비, 경아”, “개명 호스티스 속출”, “여심(女心) 너무 잘 안다”, “술 먹이지 말라”, “쏟아진 전화 편지… 중반부터 열기”, “동네사람들은 작자 아내를 ‘과거 가진 여자’ 취급”, “현실에도 여주인공과 같은 타입 얼마든지”, “작품 쓸 때는 손 씻고 수염 깎는 버릇이…”

소설을 이처럼 깨알같이 소개했으니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했을 것이다. 소설 40만부가 팔렸고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46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엄청난 성공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 하나로 1970년대의 청년 문화를 이끄는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다. 

평범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주인공 경아는 아버지가 사망해 가세가 기울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무역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취직한다. 첫 남자에게 버림받고 상처한 남자와 결혼했다 실패한 경아는 술집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시간강사와 동거하던 경아는 그 사랑이 순간의 사랑으로 깨져버리자 방황을 거듭한 끝에 눈 덮인 들판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경아의 주검을 수습하는 ‘나’ 김문오는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해 그녀와의 짧은 동거 기간을 회상하며, 경아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작가는 소설에서 여러 남자를 거치는 경아를 통해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물신 숭배 풍조에 밀려 주변부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무감과 소외 현상을 부채를 펼치듯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당시의 독자들은 경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산업사회의 이면에 펼쳐진 인간군상의 그늘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인식했을 것 같다.

그리하여 경아를 자살하게 만든 원인은 욕망으로 가득 찬 시대 분위기였거나, 아니면 1970년대의 풍조에 동조한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경아는 저마다 지닌 아픔과 슬픔이기도 했다. 따라서 순수함이 살아있는 별들의 고향으로 경아가 떠났다고 생각하며, 각자의 별을 생각했을 수 있다. 

이 소설은 1970년대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한국문학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한 진영에서는 호된 비판을 가했다. 감각적인 문장과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산업화 과정에서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결핍의 문제를 환기하면서 자기만의 별(본성)을 찾자는 시대의 표정을 풍경화처럼 제시했다. 경아를 파멸시킨 남자들도 고독과 허무에 휩싸여 몸부림쳤다는 점에서 모두가 별들의 고향을 갈망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쪽을 덮으면 왠지 먹먹해지고 쓸쓸해진다. 문오는 한 줌의 재로 남은 경아의 육신을 한강에 뿌리며 흐느끼지만, 그 또한 순간적인 격정일 뿐 자기만의 일상으로 곧 되돌아온다. 작가는 소설의 결말에서 개인의 행복만을 찾아 헤매는 1970년대 한국사회의 폐부(肺腑)를 보여주려 했으리라.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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