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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스펙터클’ 없으면 이야기도 아닐까...은유 작가의 ‘크게 그린 사람’
‘죽음의 스펙터클’ 없으면 이야기도 아닐까...은유 작가의 ‘크게 그린 사람’
  • 김재호
  • 승인 2022.09.03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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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크게 그린 사람』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사 | 301쪽

홍은전·김진숙·김현·김도현 씨 등 18인의 이야기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눈물·환희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18인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 책을 읽고 드는 첫 느낌은 섬세한 작가가 또 다른 섬세한 작가를 인터뷰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 모두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크게 그린 사람’인가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니체를 인용한 다음 구절이었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크게 그린 이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크게 그린 사람』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이다. 각각의 사연들은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인터뷰는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의 ‘업고 걷기’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할 줄 알았던 기대들과 달리, 홍은전 활동가는 대학로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로 오랫동안 활동하게 되었다. 정말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청춘을 보낼 줄은 몰랐다. ‘차별을 넘어 저항으로’ 장애인들은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차별을 받지만 제대로 저항하기 힘든 상황에 많이 놓인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저항하는 방법을 같이 고민한다. 홍 활동가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고양이를 키우는 사연과 육식을 끊겠다는 다짐을 적은 바 있다. 은유 작가 역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지향인’이 되었다고 한다. ‘채식지향인’이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든다. 

‘시대의 복직’을 다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이야기는 묵직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크나큰 아픔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전직 대통령들의 노력과 인연에도 불구하고, 김진숙 씨는 오랫동안 복직이 되지 못했다. 가까스로 명예복직을 한 후에는 바로 퇴직을 해야 했다. 한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자본가와 권력에 의해 그 민낯이 드러나는지 인터뷰로 읽을 수 있다. 김진숙 씨가 처음 인터뷰를 제안받을 때 거절했다. 아픈 몸을 추슬러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터뷰는 성사가 되었고 김진숙 씨는 고마움을 은유 작가에게 전했다. 인터뷰에는 노회찬 의원이 김진숙 씨를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트윗했던 것도 나온다. 

 

은유 작가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유 작가 인스타그램

 

자기소멸의 허무함, 슬퍼도 조금은 기쁜 쓸쓸함

일상과 성적소수자들의 경험을 시로 옮긴 김현 시인 인터뷰도 좋았다. 김현 시인의 책을 인용해 “잘들 쓸쓸하세요”라고 안부를 전하는 문장도 뇌리에 박혔다. 『크게 그린 사람』에서는 “허무함이 자기소멸의 느낌이라면 쓸쓸함은 아직 내가 있는 상태”라며, 김현 시인의 표현을 인용했다. 쓸쓸함은 “슬퍼도 기쁨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다. 

이외에도 '사람이라는 희망'의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인터뷰에서 나오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아픔'은 정신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던가 "정신질환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상태'라는 개념"이라는 지적은 공감이 많이 되었다. 특히 이 센터장이 "혐오를 혐오로 덮는 사회"라며 "그 혐오에 동원되는 정신장애인"이라고 지적한 것은 옳아보였다. 그는 사람을 희망으로 삼고자 아이디를 'humanishope'으로 쓴다. 책에서는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자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 잘 살아내야 한다. 

또한 '아들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적힌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김용군재단 이사장의 인터뷰 역시 마음을 저리게 했다. 이 섹션에 나온 다음의 문장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의 몫을 상기시킨다. "아들을 만나는 방법은 아들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잃은 자들의 몸부림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인터뷰는 ‘작은 목소리라도’의 김도현 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이야기다. 인터뷰에 따르면, 한해 산재로 죽는 사람은 2천400명, 다치는 사람은 10만 명이라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김도현 씨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투사로 변신해야 했다. “누가 먼저 자기 고통을 말하기 시작하면 고통받는 존재들이 속속 연결된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또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나의 고통을 껴안고, 다른 이의 고통을 품을 때 고통은 반감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에 앞장서 작은 성과를 이루기도 한 김도현 씨. 『크게 그린 사람』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으로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죽음의 스펙터클’이 제공되지 못하면 이야기도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추락사 유가족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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