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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소리
가을밤의 소리
  • 박구용
  • 승인 2022.09.19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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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가을(秋) 저녁(夕), 추석이다. 가을 저녁은 큰 달이 뜨는 밤이다. 달 중에 가장 큰 달이 뜨는 밤, 밤 중에 가장 밝은 밤이다. 한가위 대보름이다. 가을 저녁엔 보이는 모든 것이 밝고 예쁘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자. 밝은 만큼 무섭고, 예쁜 만큼 슬프다.    

중국 송나라 시인 구양수가 들었던 가을(秋)의 소리(聲), 「추성부」를 엿들어보자. “처음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쓸쓸한 바람 소리 나다가 갑자기 거센 물결과 파도치는 소리로 변한다. [……] 이것이 물건에 부딪쳐 쨍그랑 쇠붙이 울리는 소리 나더니, 어느 순간 적진으로 향하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문 듯 호령 소린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 달리는 소리만 들린다.” 

아마도 구양수의 마음이 꽤나 시끄러웠나 보다. 그가 들은 가을의 소리는 사실이 아니라 관념이다. 구양수가 모를 리 없다. 어린 아이에게 무슨 소리인지 묻는다. “달과 별이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 사방에 사람 소리란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의 소리입니다.” 소리를 소리로만 들을 수 있는 아이에게 가을은 맑고 밝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어른에게 가을은 맑아서 처량하고, 밝아서 쓸쓸하다.     

시는 글이지만 그림을 품고 있다. 가을의 소리를 글로 옮긴 구양수의 「추성부」는 수많은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도 여러 그림이 있다. 조석진, 안중식, 장승업과 같은 최고의 화가들이 가을 소리를 그렸다. 그 중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글과 그림, 색과 소리, 사람과 사물의 긴장과 균형이 극적으로 표현된 대작이다.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 가을의 소리는 해소되지 않은 모순으로 머물러 있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조용하다. 가족, 친구 사이에 가벼운 말씨름조차 없다. 추석 밥상 민심을 노린 정치적 수작들이 힘쓰지 못한다. 가족과 친구 중에 정치적으로 다른 편이 있지만 이번엔 편가를 일이 없다. 한쪽 편이 할 말을 잃어서다. 당분간 가을 저녁의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머물듯하다.  

20대 후반인 사내아이에게 가족들이 묻는다.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이 뻔한 주제다. 조카의 대답이 단호하다. “중단, 우리에겐 중단이 필요합니다. 10대 공부, 20대 취업, 30대 결혼과 출산, 40~50대 주택과 자녀 교육. 이 쉼 없는 시달림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방법은 하나, 중단입니다. 어디선가 멈춰야 합니다. 살려니 취업은 하겠지만 결혼과 출산은 멈추겠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20대 항변 중에 가장 쉽고 설득력이 있다. 저들에게 우리 사회는 숨 쉬고 살 시간과 공간을 빼앗아 왔다. 숨 막히는 시간과 공간에서 저들 사이 관계는 살벌한 경쟁을 넘어 살 떨리는 혐오와 증오가 지배한다. 서로를 가르고 나누는 장벽은 높아만 가고 장벽 너머로 주고받는 친절한 교환은 지독하게 싸늘하다. 

살이 저미도록 파고드는 저들 사이의 소리, 쇠붙이가 시멘트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거꾸로 어른들에게 무슨 소리인지 묻는다. “빛나는 태양,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수확을 기다리는 오곡백과 사이에서 나는 배부른 소리입니다.” 소리를 소리로 듣지 못하는 어른들의 청각 마비가 심각하다.  

김홍도는 「추성부도」를 그린 뒤 보름이 지나 세상을 떠난다. 소리에 민감했던 화가가 마지막에 들었던 소리, 그 소리는 모든 존재의 함성이다. 그 쓸쓸하지만 장엄한 소리에 다시 들어보자. 해소되지 않은 모순의 소리다. 출구는 없다. 답도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 막막한 모순 상황을 지각할 수 있도록 촉각을 깨우는 것이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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