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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프로필의 빛과 그림자…촬영을 앞두고 ‘현타’가 찾아 왔다
바디프로필의 빛과 그림자…촬영을 앞두고 ‘현타’가 찾아 왔다
  • 김예나
  • 승인 2022.09.2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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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첫 번째 주제 몸 ② 심리학자의 바디프로필 도전기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주제 ‘몸’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싣는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비용을 지원받게 되어 5개월간 준비 끝에 바디프로필 촬영을 하게 되었다. 준비과정부터 촬영 이후까지 실제 경험한 것들을 중심으로 바디프로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디프로필, 건강함과 비례하는가?

인스타그램에서 ‘바디프로필’을 태그한 게시물은 총 384만 건이다. 일상에서 자주 태그할만한 단어들을 추가로 검색해보니 ‘추석’은 363만, ‘날씨’는 413만, ‘카페추천’은 433만이다. 한국 바디프로필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된다.

바디프로필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한 번쯤은 저렇게 건강하고 멋있는 몸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또한, 사진 속 인물에 대해 ‘고통을 이겨내고 정신 승리한 사람’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곤 한다. 몸이 바뀌었더니 관심과 칭찬이 따라온다. 달콤하다. 그런데 과연 바디프로필 사진 속 사람들은 정말 건강할까. 

바디프로필을 위해 배고픔을 참고 근육을 키운다. 정말 나는 건강해졌을까? 사진제공=김예나

바디프로필 사진의 유혹과 함정

바디프로필 속 사진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에 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디프로필의 목적은 ‘건강함’이 될 수 없다. 준비과정의 끝에는 ‘미적인 아름다움’만이 목표로 남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예쁜 몸을 위해 근육을 증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이 바디프로필 세계에서는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일반인이 두세 달의 준비 기간으로 사진 속 몸처럼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체지방 감소가 가장 효율적이고, 이를 위해 절식은 필수적이다. 단편적인 예로, 바디프로필을 찍은 사람 중에 ‘닭·고·야(닭가슴살+고구마+야채)’ 식단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나트륨 섭취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나, 당류나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철저히 제한된다.

특히 촬영 직전 일주일 동안 여성 기준 한 끼 식사량은 닭가슴살 100g, 단호박 70~100g, 적당한 양의 야채 정도만 먹을 수 있으며, 촬영 전 24시간 동안 단수를 하기까지 한다. 이미 3개월을 ‘닭·고·야’만 먹고 살아왔는데, 마지막 한 주는 그마저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심지어 물도 못 마시는 상황이 된다.

첫 번째 함정, 극단적인 절식 그리고 후유증

극단적인 절식은 영양 부족으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 이외에도 다이어트 강박, 섭식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극단적인 절식이 다이어트 강박이나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는 ‘뇌 보상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아주 정교한 ‘항상성 기제’라는 것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체온조절인데, 추운 겨울 신체가 평균 체온보다 내려가면 몸이 덜덜 떨린다. 몸에 진동을 주어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상승시키려는 항상성 기제가 발동된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배가 고플 때 위에서 식욕 촉진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뇌가 이 신호를 받으면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령에 따라 어느 정도 음식을 섭취하면 식욕 조절 호르몬이 뇌로 가서 먹는 행동을 멈추도록 신호를 주게 되고 일정 기간 포만감을 유지 시켜준다. 이것이 영양 공급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항상성 기전인데, 극단적인 절식이 반복되면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 후유증 중 하나가 폭식증으로, 끊임없이 먹고 싶은 욕구가 발생한다. 

바디프로필의 부작용으로 요요현상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의지로는 조절이 안 된다는 고백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또 무언가를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몸과 뇌는 식욕 촉진 호르몬에 좀비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호르몬의 불균형을 정신력이 이겨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에셔의 「원의 극한 IV: 천국과 지옥」(1960). 이 세상에는 천사와 악마밖에 없다. 

두 번째 함정, 이분법적인 사고
  
바디프로필 열풍으로 인해 이전에는 잘 사용되지 않던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 ‘클린푸드’ 또는 ‘더티푸드’라고 들어보았는가? 일반인에게 클린푸드와 더티푸드의 이미지의 차이를 물어보면 더티푸드는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짜고 단 음식들, 높은 열량의 이미지로, 클린푸드는 양념이 적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극명하게 구분될 수 있다. ‘닭고야’는 클린푸드이고, 그 외 식품은 더티푸드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식이섬유 등의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 먹되 양을 조절하자는 취지에서의 클린 식단이 어느새 이것 아니면 모두 더티푸드인 것으로 변질된 듯하다.

핵심은 다이어터들에게 클린푸드와 더티푸드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 체계가 정립된다는 것이다. 인지치료를 창시한 아론 벡(A. T. Beck)이라는 학자는 부정적인 사고를 야기하는 인지적 오류를 제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분법적 사고(all or nothing thinking)는 모든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흑이 아니면 백처럼 양극단 중 하나로 평가하거나 완전한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구분하며 경험을 극단으로 범주화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다이어터들에게 클린푸드가 아닌 음식은 모두 더티푸드로 생각하게 만들고, 클린푸드가 아닌 더티푸드를 먹게 되면 나의 이번 식단은 망했다고 생각하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클린푸드가 아닌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문제시 여기면서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한다. 참고 참다가 클린푸드가 아닌 음식을 먹게 되면 나는 곧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심한 경우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강도 높은 운동량과 계속되는 절식으로 인해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는 바닥이 난 상태다. 안 그래도 힘든데, 죄책감과 수치심까지 느끼게 되니 바디프로필 촬영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심한 ‘현타’를 경험하게 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필자는 마음 편히 더티푸드를 먹었다. 물론 다음 날 먹은 칼로리를 소모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면서 하체 운동을 했지만 말이다. 

바디프로필. 화려한 조명을 두르고 있는 조각상 같은 피사체의 모습만큼이나 그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 또한 크고 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바디프로필의 함정에 빠진 결과, 멋있는 내 몸의 사진과 함께 어떤 정신건강 문제가 다가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김예나 한국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국침례신학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독심리전문가이자 건강심리전문가로서 특히 행동중독 분야에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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