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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러시아 우회로, 미국·중국·일본의 콜렉션
북한·러시아 우회로, 미국·중국·일본의 콜렉션
  • 우동현
  • 승인 2022.09.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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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⑦ 세계 속의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여태껏 필자는 국내외 북한사 연구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러시아 문서고(文書庫, archive)와 문서보관소(repository)에 소장된 사료를 다루었다. 이번에는 세계의 어느 곳에 그러한 사료가 소장돼 있고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개괄한다. 러시아 방문이 지극히 까다로워진 오늘날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길 희망한다.

먼저 미국으로 가보자. 앞선 연재에서 얘기한 것처럼,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방대한 양의 문서를 탈취해 본국으로 보냈다. 흥미롭게도, 이 문서들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저장돼 오늘날 북한 연구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전쟁 당시 미 국무부는 북한 지역에 정보조사단을 파견해 현지조사도 수행했다. 그 결과물이자 1961년 비밀 해제된 『북한: 사례연구』는, 역사가 류기현에 따르면, 자료의 부재 속에서 미국 내 북한연구의 원형으로 기능했다.

『북한: 권력 장악의 기술에 대한 사례연구』의 표지. 캘리포니아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실물 자료를 구글이 디지털화해 제공한다. 사진=우동현

냉전사 연구 주도하는 미국 ‘윌슨센터’

냉전기 ‘적(敵)’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한 나라답게 미국은 관련 연구·교육 기관을 다수 보유한다. 그중 냉전사 사료가 있는 유수의 기관으로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 의회도서관, 우드로윌슨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조지워싱턴대학 국가안보문서고(National Security Archive),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학 데이비스센터(Davis Center),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e) 등을 들 수 있다. 이 기관들은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냉전과 관련된 문서, 책자, 회고록, 포스터, 음성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북한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자료들이 포함돼있다.

영어권 학계에서 냉전사 연구를 주도하는 기관인 윌슨센터는 구(舊)소련 국가들과 중국 등지에서 수집한 북한사 사료를 영역(英譯)해 공개하는 북한국제문헌프로젝트(North Korea International Documentation Project)를 비롯해 다양한 냉전사 사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이 중에는 현재 접근이 어려운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고나 러시아국립현대사문서고의 비밀문서들도 포함돼있다.

한편 필자는 2018년 가을 윌슨센터에서 학술 발표를 하면서 센터에 소장된 북한사 사료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담당자는 센터가 막대한 양의 북한사 관련 중국 자료(당안檔案)를 소장하고 있으나 언제 공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가 제공하는 북한사 사료는 연구자들에게 러시아를 가지 않아도 1950-1970년대 북한정치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미 의회도서관 아시아열람실의 북한 컬렉션

윌슨센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미 의회도서관은 북한사 사료의 또 다른 보고(寶庫)이다. 특히 이 도서관 아시아열람실(Asian Reading Room)의 북한 컬렉션은 194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수집된 북한사 자료(주로 잡지와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역사가 김성보·이준희가 발굴한, 초기 북한에서 민간 상업의 역사를 보여줄 ‘조선상사주식회사’ 자료도 포함돼 있다.

아울러 같은 컬렉션은 국내에서 접근이 힘든 1948~1964년 사이 생산된 북한 연속간행물 140여 점에 대한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실로 귀중한 연구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열람실은 북한의 국가 건설에 기여한 고려인 80여 명의 회고록과 자서전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순간통신』 1949년 1월 상순호의 표지. 제호에서 알 수 있듯, 이 잡지는 북한 국내외의 사정을 열흘마다 보도했다. 사진=미 의회도서관 아시아열람실 해당 자료

중국의 비밀주의…일부 자료는 3곳에 비치 

북한의 역사적 우방인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당국은 관련 자료를 방대하게 생산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국립문서고인 당안관(檔案館) 접근에는 엄청난 제약이 부과됐다는 게 중론이다. 관련 사료의 공개는 요원하다. 

이러한 어려움은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역사가 션즈화(沈志華)가 2003년에 펴낸 3권짜리 자료집 『한국전쟁: 러시아문서고 비밀해제 문헌』 서문에 잘 드러난다. 션즈화는 199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1만5천여 건에 달하는 관련 사료를 수집했으나, 중국 당국의 비밀주의 때문에 이것들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중 극히 일부를 수록한 자료집을 홍콩에서 내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대만에서 출판했다. 션즈화는 연구자들의 편의를 위해 자료집 원문의 복사본을 중국 북경대학 도서관(베이징), 대만 중앙연구원 문서고(타이베이), 홍콩중문대학 중국연구서비스센터(홍콩)에 비치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러시아문서고 비밀해제 문헌』의 일부. 이 자료집은 역사가 션즈화(沈志華)가 입수한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자료 650여 매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관련자들의 전쟁수행 결정 과정을 비롯해 전쟁 당시 북한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원 자료 복사본의 일부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돼 있으나 현재는 비공개 상태이다. 사진=우동현

일본 아오야마카쿠인대와 도쿄대 도서관에도

그밖에도 북한과 깊은 역사적 관련을 맺은 일본, 독일 등지의 국립문서고와 개별 대학들에 북한 관련 문서가 소장돼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 기무라 미쓰히코(木村光?)는 직접 수집한 러시아국립경제문서고의 자료들을 자신의 근무처 아오야마가쿠인대학(青山學院大學)과 도쿄대학 교양학부 도서관에 비치했다. 

이처럼 러시아에 가지 않아도 북한 사료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7회 연재를 통해 북한 국립문서고가 열리지 않는 상태에서 연구자들이 택할 수 있는 우회로를 다루었다. 이를 토대로 다음 편에서는 북한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짚고 나아갈 길을 전망해본다.

우동현 객원기자 / 요크대 박사후과정 
UCLA에서 한국현대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예정),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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