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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 최승우
  • 승인 2022.09.16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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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노 겐지 지음 |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120쪽

조선을 사랑한 죄로 조선에서 추방당한 일본인
그가 조선의 기억을 담아 만든 대표 시집 『까치』

이후로도 경성을 거점으로 재조일본인과 조선 문인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학 활동을 전개한 우치노 겐지를 조선총독부는 계속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1928년에 교사직에서 파면되고 환송회조차 허락되지 상태로 조선에서 추방당합니다.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쫓겨나는 이상한 상황에 처한 우치노 겐지는 도쿄로 적을 옮긴 후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기는커녕 더 날카롭게 세웁니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기억을 되새기며 과거와 현재를 담은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조선어를 그대로 쓴 『까치』로 짓습니다.

『까치』에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조선을 그리워하는 우치노 겐지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일종의 풍속화집과 같은 의미로 본 시집을 만들었습니다. 제목부터가 한반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새의 의미로서 ‘까치’를 쓰고 있거니와 6.10만세운동의 계기가 된 순종의 장례, 일제 수탈의 도구 역할을 한 철도, 아낙네들이 모이던 빨래터, 김장철, 민중의 주거 상태, 길거리 모습 등 당대 우리나라의 풍경들이 시로써 충실히 구현되었습니다. 조선철도국에서 가져온 사진들이 수록된 것도 당대의 모습을 시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그의 의지였을 것입니다.

잘못된 국가에 맞선 이가 겪어야 했던 고통
그리고 또 다른 식민지의 모습

『까치』의 또 다른 측면은 작가 개인사적인 부분들과 러일전쟁 이후의 다롄의 풍경입니다. 일본으로 추방된 우치노 겐지는 일본인이었지만 추방자라는 딱지가 붙은 이상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엄혹한 가난이 그에게 찾아왔고 이는 『까치』에서 나오는 도쿄에서의 삶을 그린 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와의 결혼 모습과 부부 생활을 그린 시들에서 따스함, 때에 따라 유머러스함까지 느껴지는 것은 그가 고난한 삶 속에서의 위안을 어떻게 얻었는지 느끼게 만듭니다.

다롄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차지가 되어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즉 또 하나의 한반도였던 셈입니다. 여기를 점령국 국민의 일원으로 찾아가게 된 우치노 겐지는 도시화되고 일본의 영향에 들어서는 다롄의 풍경을 가감없이 묘사하면서 또한 현지 사람들에게 배척되는 외부자로서의 슬픔을 보여 줍니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으로의 귀국이 추방이었던 우치노 겐지는 이러한 현실에서 더 크고 아이러니한 슬픔을 체감했을 것입니다.

우치노 겐지는 『까치』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 작가 아라이 데쓰라는 필명으로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는 평생의 문학 활동을 쉬지 않고 진행합니다. 그런 그를 일제는 위험분자로 간주하여 체포와 구금, 고문으로 박해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일본제국의 붕괴를 1년 앞둔 1944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양심적 일본인으로서의 기록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 시대를 소환해 냅니다. 『까치』는 그러한 의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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