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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지식인, ‘신의 섭리’를 탐색하다
한·중·일 지식인, ‘신의 섭리’를 탐색하다
  • 최정연
  • 승인 2022.09.2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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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 『주제군징』 아담 샬 지음 | 전용훈 외 4인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20쪽

만물은 우주 전체의 완성을 위해 효율적으로 설계
삼국의 지식인, 낯선 지식에 저마다 의견을 발신

이 책은 서양 중세의 과학과 의학 지식을 동원하여 신의 존재와 섭리를 입증하기 위해 저술된 호교서이다. 이것은 독일 출신의 예수회원 아담 샬(1591~1666)이 레시우스(1554~1623)의 『De providentia numinis et animi immortalitate libri duo adversus Atheos & Politicos』 (무신론자와 정치가들에 대항한 신의 섭리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 2권 중 제1권을 발췌하고 번안하여 출판한 한문본이다. 책 제목의 ‘主制’는 ‘신의 섭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主制群徵’은 신이 피조물의 존재와 운동이 유지되도록 ‘관리하고 조절함을 증명하는 여러 증거’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아담 샬이 『주제군징』을 기획한 의도는 서문과 본문 수장(首章)에서 확인된다. 그에 따르면 만물은 ‘우주 전체의 완성’이라는 ‘보편 목적[公向, finis universalis]’을 위해 효율적으로 설계되었는데, 인간이 이성을 써서 그 목적을 탐구하면 결국에는 설계자인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본문에서는 천체와 자연물, 동식물, 인간의 구조와 운동의 정교함을 설명하고, 그들이 구현한 우주적 조화와 질서의 오묘함을 밝힌다. 아담 샬은 개체가 우주 전체의 완성에 참여하도록 설계되었음을 논증하기 위해 연극의 비유를 가져온다. 각 배우가 제 배역을 잘 소화하여 하나의 연극을 만들어내듯, 개체가 제 직분에 잘 맞게 역할하여 우주 전체의 조화와 질서를 완성한다. 연출가의 기획력이 없으면 연극이 성립될 수 없듯이, 신의 주제가 없으면 우주의 질서와 조화 역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지적 관심으로 비판적 수용

아담 샬은 다른 예수회원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신의 전지전능과 지선지미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도 신의 증거인 이상, 그리스도교를 접하지 못한 동아시아인 역시 『주제군징』의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믿게 되리라 기대하였다. 실제로 중국의 방이지(方以智, 1611~1671)와 왕굉한(王宏翰, 1648~1700), 진원룡(陳元龍, 1652~1736), 호정광(胡廷光, ?~?), 조선의 이익(李瀷, 1681~1763)과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이규경(李圭景, 1788~?), 일본의 오오츠키 겐타쿠(大槻玄沢, 1757~1827) 등이 『주제군징』에 소개된 인체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회원의 기대와 달리 각자의 지적 관심과 목적에 따라 텍스트를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했을 뿐, 그들 중에 『주제군징』의 기획 의도대로 신 존재를 탐색하여 신앙의 길로 들어선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주제군징』은 한·중·일 지식인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을 제공하였고, 지식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조하였다. 이들 삼국의 지식인은 교류하거나 지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제군징』을 공통 매개로 낯선 지식에 대한 의견을 저마다 발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시우스의 라틴어본 원서(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이미지=한국학중앙연구원
주제군징 소인판(바티칸 도서관 소장본). 이미지=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출판된 『주제군징』 역주서는 전근대 유럽과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 현장을 탐색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연구 모임의 첫 번째 산물이다. 레시우스와 아담 샬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중국의 이조백(李祖白, ?~1665)이 그들의 대화에 합류했으며, 후대에 다시 한·중·일 지식인이 그 소통의 장에 참여하여 전통 지식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 것처럼, 본 연구팀도 『주제군징』을 매개로 그들의 교류에 동참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기존 연구 성과를 발판으로 삼고 학제 간 협업과 문헌학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원문을 번역하고 역주를 덧붙였다.

본문과 각주에서 역자들이 범한 여러 오류가 발견되겠지만, 한문본을 정밀하게 교감하고 국내 최초로 라틴어본과 대조하였으며, 각 전공자의 전문 지식을 살려 번역과 역주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출판이 쓸모없지 않을 것이다. 본 역주서가 한국 서학 연구의 진척에 일말의 보탬이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최정연
안양대 신학연구소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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