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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사회(2022년 가을호)
문학과사회(2022년 가을호)
  • 최승우
  • 승인 2022.09.16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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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편집동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508쪽

문학적 경험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좋은 문학작품을 만나기를 바라고, 텍스트와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특별한 시각과 태도를 얻기를 희망한다. 문학이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을 담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남다른 세계 인식과 감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문학을 지탱하는 오래된 신념 중 하나일 것이다. 더 나은 삶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는 의지 속에서 문학은 세계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문학에 대한 수많은 이론적 탐구와 비평적 논의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는 가운데, 문학의 본질적 기능과 위상을 해명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주지하듯, 이와 같은 모색들은 다른 예술 장르들과 구별되는 문학만의 장르적 특수성을 규명하고, 그것의 시대적 의미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확장되어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으로 수렴될 수 있는 비평적 언어들은 문학만의 독자적 가치와 그 존재의 정당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문학의 사회적 위상이 축소되고,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의 비판적 흐름들은 문학의 본질(문학성)이 존재한다는 전통적인 시각이 모종의 차별과 배제를 낳은 주요 원인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문학은 더 이상 ~이 아니다’라는 해체주의적 규정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들의 반복이 ‘문학에 대한 회의주의’라는 역설적 믿음을 오히려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시각이나, 문학을 특별한 예술 장르로 간주하는 낭만주의적인 관점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관습적인 담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마저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는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단순하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욕망과 기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 문학의 변화를 사유하면서도, 그것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어휘로 탐색하려는 새로운 의지가 아닐까. 동시대 작가와 독자 들이 문학을 경유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를 검토하고, 그것이 어떠한 내용과 형식 속에서 충족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우리는 문학에 대한 새로운 동시대적 개념 정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주제인 ‘문학적-경험’은 문학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새로운 사유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제안된 키워드이다. ‘문학적 경험’은 그 자체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작품과 독자 사이에서 발생한 예외적이고 특수한 체험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이자, 특정한 텍스트와의 만남 속에서 형성된 소중한 상호 교류의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독자로서 우리가 ‘문학적 경험’을 했다고 토로할 때, 그 말에는 이미 작품에 관한 비평적 판단과 더불어 작품과의 조우 속에서 어떤 이례적인 가치를 발견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적 경험’은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여,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다양한 문제의식이 형성되는 감각적 진원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적 경험’이라는 말의 본질과 성격을 해명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이러한 어려움은 ‘문학적’이라는 수식어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문학적 경험’을 다른 예술적 체험과 구별시켜주는 요소와 근거까지 고려한다면, 질문의 복잡성과 막연함은 한층 심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영화, 연극, 음악, 시각예술 등의 다른 예술 장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문학적 경험’을 발견한다. 이러한 주관적 반응은 그것을 불러일으킨 대상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가령 문학적 영화, 시적 연극 등의 수사적 표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적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문학적 경험’이라는 사건은 여전히 많은 해명을 필요로 하는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문학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모종의 예외적인 체험을 가리켜 ‘문학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과연 ‘문학적 경험’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믿고 있듯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른 장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체험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을까?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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