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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22 가을, 140
역사비평 2022 가을, 140
  • 최승우
  • 승인 2022.09.16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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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578쪽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
―공정과 평등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 능력주의의 기원과 진화

이번호 특집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는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된 능력주의의 역사를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찾고자 했다. 조형근은 20세기 말 21세기 초 기울어진 운동장만 바로 잡는다면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경쟁과 실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개혁 자체가 오늘날 능력주의사회의 기초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이후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강화되어온 것이지만, 진보도 책임이 없지 않다. 소액주주 운동과 같은 특권 반대가 약자를 위한 특혜 반대라는 파괴적 능력주의 논리와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이기훈은 신문의 독자란에서 1930년대 후반 확산된 입신주의와 수험열의 실태를 파악하고, 사회적 소통과 변화를 위한 희망의 부재의 결과로 확산된 이 현상들이 능력주의의 식민지적 기원이라고 보았다.

황병주는 1960~70년대 개발연대를 능력주의 확산의 시기로 규정했다. 그는 교육과 노동정책 속에서 능력주의의 제도화, 능력 측정 수단으로서 지능검사의 확산 과정 등 이 시기 개발연대의 능력주의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오제연은 한국 고등교육의 대중화 추이 속에서 학력주의의 확산과 대학서열주의로의 변형 과정을 학력 간 임금격차, 당시 대학생과 시민들의 인식 등을 통해 분석했다. 대학서열주의가 일종의 ‘도착된 능력주의’라는 비판이 서늘하다.

이상록은 1970~80년대 노동자들이 능력과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들의 생활글을 통해 분석했다. 별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웅얼거림 속에 응축된 수용과 저항의 복합심리를 날카롭게 파악한 연구다.

한국전쟁 속의 중국, 그 기억과 정동
―동북아시아 긴장과 대립 속에서 돌아보는 한국전쟁과 중국

한국전쟁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 속의 중국, 그 기억과 정동’을 기획으로 다뤘다. 백지운은 지난 70년간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통제, 규율되어왔는지 살펴보았다. 인민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인민전쟁’의 정치 사상적 원리가 등장하고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중국의 국제관계와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홍석률은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의 중국군에 대한 인식을 분석했다. 이승만은 중국과 중국군의 자생성과 주체성을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철저히 익명화된 존재로 파악했다. 이런 극단적 멸공주의는 상대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지순은 1950년대 북한의 시 작품 속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함께 싸운 형제의 이미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이 두 나라의 유대를 매개하는 역할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다.

한국 근현대 역사학과 민족·민중·인민
―남북한의 근현대 역사학에서 민족과 민중, 인민이 호명되는 방식

근대 역사학에서 민족과 민중(인민)은 핵심 중에서도 핵심어다. 모든 세대의 역사학자들에게 역사 서술의 체계를 구성하는 기초이고, 근간을 구성하는 만큼 여기에 대한 발본적인 탐색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 역사학과 민족·민중·인민’에 실린 세 논문은 각자 새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신채호의 사상적 무게중심이 민족에서 민중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지만, 왜 그랬는지, 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허수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텍스트마이닝 기법을 통해 여러 글마다 ‘민중’과 다른 단어 간의 연결망이 다르게 구성되는 것을 확인하고, 각각이 운동적, 학술적, 소설적 글쓰기의 소산이라고 설명했다. 텍스트의 장르가 결정했다는 것이다.

심희찬은 남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인 이기백이 민족사 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이기백은 헤겔의 ‘자유’ 개념을 도입하여 한국사를 정치적 자유의 확대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지만, 한계와 모순도 명확하다고 한다.

홍종욱은 북한 역사학에서 ‘인민’과 ‘민족’의 위상 변화를 연구했다. 그는 북한 역사학의 발전 속에서 식민지-주변부 역사학의 특수성과 함께 비판적 역사학의 국경을 넘는 동시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료와 실증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 제일주의로 진행된 주체사관은 반식민주의가 아닌 반역사학으로 귀결되었다고 비판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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