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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우동현
  • 승인 2022.10.07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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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⑧ 북한사 연구의 현황, 과제, 전망(끝)

한국전쟁을 일으켜 냉전의 전개 방향을 바꿨고, 
지구적 반미전선의 선봉장을 자임하며, 
서방의 강고한 제재 아래 나름의 사회주의 건설 프로젝트를 고수하는 
독특한 코리아인 북한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의 가치는 무척 높다.

필자는 그간 러시아 문서고(文書庫, archive)와 문서보관소(repository)에 소장된 북한사 관련 사료를 다루었다. 북한 국립문서고가 열리지 않는 상태에서, 이 자료들은 새로운 북한사 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이 글에서는 북한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짚고 나아갈 길을 전망해본다.

북한사 연구는 크나큰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문학 전반의 문제이겠으나, 북한사 분야는 후속 연구자 세대를 키울 수 있는 물적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별다른 학회도 조직되지 않아 연구자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한국역사연구회 북한사연구반이 주축이 돼 서울대와 경희대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북한사’ 학술회의(2016)가 가장 최근의 성과에 포함된다. ‘북한사 연구’만으로 먹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역사학 기반 북한사 연구, 자료 신빙성 따져야

북한사는 국내에서는 사회과학이 주도하는 ‘북한학’의 일부이고, 국외에서는 ‘한국학’의 일부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북한사는 특정 학문 분야 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엄밀성이 강조되는 역사학의 탐구 대상에서도 북한은 종종 제외된다. 노력을 들여 성과물을 냈을 때, 돌아오는 보상이 적은 학문 분야가 맞닥뜨리는 일상이겠다.

극소수의 역사학 기반 북한사 연구는 주로 북한 자료를 근거로 이용한다. 하지만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며 언급했듯, 그러한 자료가 담고 있는 내용의 사실여부는 알기 어렵다. 당국의 정보 통제와 언론 검열이 한층 더 강화되는 1960년대 이후 생산된 북한 공간물에 나타난 내용이나 수치를 사실이라고 볼 근거는 거의 없다.

한편 북한 자료를 ‘선전물’이라며 도외시하고 외국(소련, 헝가리, 독일 등) 자료를 우선시하는 문제적 경향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 자료들이 가진 내용의 신빙성을 따져야 할 것이다.

2018년은 북한사 연구에서 특기할 만한 해였다. 초기 북한사의 권위자 기광서 교수가 본인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을, 조수룡 박사가 북한·러시아 자료를 토대로 전후 1950년대 북한경제사를 새롭게 쓴 학위논문을 냈기 때문이다.

필자가 러시아에서 발굴한 1958년도 북한 공간물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도서목록(한서분류목록 1)』의 표지. 북한의 대표적인 문서보관소인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소장돼있는 한서(漢書)의 목록을 세 권에 걸쳐 정리한 것이다. 이 고서(古書) 자료들은 한국전근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사진=우동현

필자는 한미 양국 북한사학계의 소통을 위해 조수룡의 업적을 미국 학술장에서 홍보했다. 당시 한 미국인 연구자가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러시아와 미국에서 공부한 북한사가였다. 최근 필자는 그 연구자가 홀연히 학계를 떠났다고 들었다. 세계 어디서든 북한사 연구자를 위한 자리는 결코 많지 않다.

북한사 연구 앞에 놓인 과제를 짚어보자. 무엇보다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의 추가적 확보가 절실하다. 재력을 갖춘 국내 기관이 주축이 돼 러시아에 있는 중요한 사료를 수집할 수 있겠다. 북한 출입이 가능해질 미래에 현지에서 사료 수집 작업을 즉시 착수할 수 있도록 북한 내 어느 기관에 무슨 자료가 있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국내로 들여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개별 연구자가 소액의 지원금을 받아, 또는 사비를 들여(!) 사료를 모으는 작업은 유의미하지만 여러 한계를 지닌다. 그중 하나가 동일 사료의 중복 수집이다. 사료를 제한적으로만 공유하는 학계의 관행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는 다시 역사학계에서 지배적인 ‘새로운 사료=새로운 서사’라는 이해방식과도 관련이 깊다.

필자가 러시아에서 발굴한 1953년도 『김일성 선집』 제4권의 표지. 북한 최고지도자의 어록을 담은 전집류는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사후 개찬을 거쳤다. 하지만 이 자료처럼 1950년대 초에 나온 선집에 담긴 김일성의 언행은 1960년대 이후 발행된 내용보다 비교적 왜곡이 덜하다. 사진=우동현

새로운 서사는 북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가

새로운 사료의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사 연구의 현실적인 과제는 새로운 서사 창출이다. 필자는 소련 문서고 자료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냉전기 소련사가들의 연구가 힌트를 준다고 본다. 이들은 당시 학계에 팽배했던 전체주의론(totalitarianism)을 거부하여 수정주의자(revisionist)라고 불렸다.

대표적 ‘수정주의자’이자 UCLA의 역사학자 아치 게티(J. Arch Getty)는 방대한 양의 신문 자료를 활용해 1930년대 소련 지도부의 혼란상과 소련 전역에서 폭력의 분출을 주도한 지방의 주체성(agency)을 드러냈고, 당시 서구 역사학계의 ‘소련=전체주의’라는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북한사 서사가 오늘날의 북한 이해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관련 연구서 대부분의 기저에 놓인 대서사는 북한 체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초기의 다양성·역동성을 잃었다’라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의 북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련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역사가들은 그러한 ‘경직되어 가는 체제’와 지금까지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현재 북한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다. 향후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됨에 따라, 현재 북한의 모습을 재해석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유의미한 서사의 출현을 기대한다.

북한사 연구의 전망은 연구와 경력, 어느 측면에서도 밝지 않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일으켜 냉전의 전개 방향을 바꿨고, 지구적 반미전선의 선봉장을 자임하며, 서방의 강고한 제재 아래 나름의 사회주의 건설 프로젝트를 고수하는 독특한 코리아인 북한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의 가치는 무척 높다.

오늘날의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면밀히 탐구할 필요가 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썼듯, ‘과거는 현재의 서막(What's past is prologue)’이기 때문이다. 북한사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러시아라는 하나의 우회로를 다룬 필자의 연재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와 수고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동현 객원기자 / 요크대 박사후과정 
UCLA에서 한국현대사(북한-소련 관계사)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예정),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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