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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원자
저주받은 원자
  • 최승우
  • 승인 2022.09.30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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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햄블린 지음 | 우동현 옮김 | 너머북스 | 488쪽

풍요로운 미래라는 원자의 약속이 세계를 어디로 인도했나?
미국 주도 원자력(핵기술)의 국제사에서 남북한은 어디쯤 있을까?

『저주받은 원자』는 1950년대 이후 지난 70년 동안 미국 주도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계획이 아시아(한국·일본·인도·파키스탄), 아프리카(가나·남아공), 라틴아메리카(브라질·아르헨티나), 중동(이스라엘·이란·이라크) 등지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국제사 저작이다. 특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원자의 약속에 매료되었던 한국과 북한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핵기술을 발전시켜 온 한반도의 원자력 현실을 역사적인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게 해줄 특별한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평화적 핵기술’을 이용해 온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는 미국이 그러한 핵기술(원자로)을 가지고 석유 생산국들을 상대로 지정학적 영향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려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무척 역설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평화적 핵기술이란 것은 결국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수사를 내걸고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설정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핵무기의 확산을 주도했다.

원서의 제목 중‘저주받은wretched’이라는 단어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The wretched of the Earth』로 영역된 프란츠 파농의 1961년 저작 『Les Damn?s de la Terre』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전에 노예나 짐승 취급을 당하며 주변화된 피식민지 사람들이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 받았을 때 벌어지는 통렬한 역설을 ‘원자’에 적용한 것이다.

제이콥 햄블린 교수(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는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기술적 해결책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패권과 신식민지, 인종주의 문제와 연계하여 볼 것을 제안한다. 원자를 둘러싼 지구적 다툼은 동서 진영 간이 아니라 핵기술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이었다.

요컨대 이 책은 20세기 후반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 체제가 확대된 국제정치적 맥락, 핵 비확산 질서에 내재된 인종주의와 신식민주의 요소, ‘깨끗한 에너지’로서 핵기술이 갖는 상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입체적인 서술을 통해 미국의 핵기술 ‘도박’이 만들어 낸 현재진행형 지구사를 생생하게 해부한다.

지난 세기 한국은 평화적 원자라는 약속을 받아들였다. 일부 사람들의 문제제기는 무시한 채 국가적 지원으로 선도적인 원자력 발전 국가로 거듭났다. 2011년 후쿠시마 재난은 원자력의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꿔놓았고 지난 정부는 원자력에서 벗어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2년 새로운 정부가 다시 원자력에 전념하겠다고 회귀 선언을 하며 현재 원자력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논쟁이 요동치고 있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원자가 앞으로 상당 기간 확고부동하게 자리할 것으로 내다본다. 깨끗하고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구호에 가린 본질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실체를 파헤치는 이 책은 이 논쟁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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