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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식민사관은 어떻게 ‘천황제 파시즘’으로 변태했나
황국·식민사관은 어떻게 ‘천황제 파시즘’으로 변태했나
  • 김봉진
  • 승인 2022.10.1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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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다 ⑦ 일제의 동양사·동양학

올해로 광복 77주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좌우 대립 등 이념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한국인은 당파 싸움만 하며 전통만 고수하다가 나라를 빼앗겼을까. 이번에 출간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시리즈는 그동안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일제 식민사학의 실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대학·언론·박물관·철도주식회사·조선총독부 등은 과연 어떤 식으로 식민사학을 개발해왔는지 알아본다. 

일곱 번째는 김봉진 기타큐슈(北九州) 시립대 명예교수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과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양학 변천』에 대해 서평을 썼다. 김 교수는 이 교수의 연구가 일제의 대학, 언론계, 정부 기관, 관련 인물을 분석함으로써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지평으로 이끌고 앞으로 가야 할 지평을 열어준다고 평했다. 

 

식민사학·사관과 황도론·대외 팽창론을 비판적 분석
동아시아 근대 역사학을 해체하는 작업의 지평 열어

“일본에서는 요즈음 각종 변태의 계보와 함께 새롭게 발명된 전통, 국민 사조가 격세유전을 거듭하듯 되살아나고,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국적을 가리지도 않고, 거기에 터잡은 일본적 DNA를 활성화시켜 변태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총8권)’의 출간 취지에 대해 “지금까지의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의 틀에서 벗어나 제국 일본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생산의 주요 조직”들을 조사하면서 “누가, 어떻게 역사 왜곡에 나섰는지”를 살폈으며 “일본제국 침략주의의 실체”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져본다는 심정으로 연구에 임하였다”라고 했다. 이어서 그 실체를 가리는 ‘두 개의 베일’을 벗긴다. 하나는 ‘메이지 유신의 성공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제국이 단지 ‘제국주의의 하나일 뿐이라는 일반론’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인식의 덫이 그 엄청난 범죄적 침략 행위에 면죄부 효과를 가져와 비판의식을 더욱 흐리게 하였다”라고 지적한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의 개소식 모습이다. 김봉진 기타큐슈 시립대 명예교수는 이곳 에서 개발된 동양학은 아직도 학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

일본제국을 제대로 알려면 ‘성공 속 실패’를 보아야 한다. 메이지 일본의 근대화는 ‘근대의 정(正)과 부(負)’ 양면 모두를 ‘성공적으로’ 수용한 결과로서, ‘부의 성공적 수용’이란 ‘실패’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일본제국 침략주의는 ‘실체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천황제 국가주의에 따른 침략주의로서 서양 제국주의와는 그 실체가 다르다. 그것을 구성하는 일본 전통, 일본적 DNA의 계보도 다르다. 서양의 그것보다 그 뿌리는 깊고, 가지는 넓다. 뿌리는 『일본서기(日本書紀)』·『고사기(古事記)』의 ‘기기(紀記) 신화’에 보이듯 천황계 세력의 왜(倭) 지역 정복/침략-지배를 신화화하고 은폐/조작한 일본 고대사에서 비롯되고, 가지는 일본사 전체에 퍼져 있다. 총서 중 1권과 8권은 이 가운데 근대의 계보 일부를 ‘대학, 언론계, 정부 기관’ 등과 관련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밝힘으로써, 역사 연구가들을 미처 가보지 못한 지평으로 이끄는 한편 앞으로 가야 할 지평을 열어준다.

 

일본적 DNA의 근대적 계보, 그 기원을 찾아서

이태진의 두 저서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과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양학 변천』의 문제의식은 ‘일본제국의 역사를 시야에 넣고 그 실체를 직시하라, 일국사 시각과 수입된 역사학 이론/방법론을 넘어서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반성과 비판의식’을 일깨우는 내용도 담겨 있다. 또한 ‘실체뿐만 아니라 계보를 해체해나가라’는 연구 방향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은 ‘동양사’ 개발과 침략주의 역사 교육의 배경과 전개를 다룬다. 관련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나카 미치요(那珂通世)이다. 쇼인은 일본적 DNA 계보의 하나인 국학(國學)의 황도론, 황국사관을 계승하여 대외 팽창론을 펼쳤다. 그가 처형된 지 약 10년 뒤 1868년, 문하생들은 메이지 정부의 주역이 되어 스승의 계획을 실천해갔다. 이로써 쇼인 사상은 천황제 국가주의, 침략주의의 표상이 된다. 미치요는 중국사를 서양사 형식에 따라 정리하고 나아가 동양사를 제창했다. 이때 동양이란 아시아의 주변국, 곧 일본이 정복/침략해야 할 곳을 표상한다. 

미치요가 제창한 동양사는 쇼인 사상의 황국사관을 잇고, 식민사관/식민사학을 짜내는 틀이 된다. 실제로 메이지 일본은 황국사관에 입각해 1890년대부터 한국사를 일본사에 편입하고 식민사관의 ‘당파성, 정체성, 타율성’ 등의 허상으로 왜곡/날조했다. 예컨대 단군 조선을 신화로 다루고, 그 앞뒤의 역사를 파묻거나 변질시켰다. 한겨레의 넓은 활동 영역을 좁히거나 일본, 중국의 것으로 꾸몄다. 유구한 역사를 축소하고, 멋대로 은폐/조작했다. 이러한 식민사관/식민사학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뿌리깊게 퍼진 채 변태를 거듭하고 있다. 

이어서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사상적·정치적 편력을 고찰하는데, 이를 위해 저자는 1908년의 평전 『요시다 쇼인』부터 1944년에 펴낸 『필승국민독본』까지 12권의 저술을 검토한다. 도쿠토미는 쇼인 사상을 계승하여 황도주의, 반미주의, 천황제 파시즘 등으로 변태시키면서 국가주의, 침략주의를 강화하고 국민에게 전파한다. 이 과정에서 그것들은 일종의 국민 사조가 되어 일본적 DNA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여전히 곳곳에 숨어들어 각종 변태의 계보를 재생산하고 있다. 

 

동방문화학원 본관·도쿄연구소의 모습이다. 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양학 변천』은 쇼와 시대에 외무성이 관리한 동방문화학원과 산하 도쿄 연구소와 교토 연구소를 비롯해 1939년 문부성 지원으로 도쿄, 교토 두 제국대학 아래 설립된 동양문화연구소,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 성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들 연구소에서 활약한 어용학자들의 학맥은 일부 교체되었을지는 모르나 지금껏 곳곳에 이어져 있다. 이에 따라 거기서 사육된 동양사, 동양학, 동방학, 대동아학 등 천황제 국가주의 역사학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일본은 물론 한국 등 여러 나라의 학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건만 ‘자기반성, 비판’은커녕 이들 연구소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두 저서의 ‘에필로그’에서 이태진은 일본제국 침략의 역사는 한일 간의 역사분쟁을 넘어선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성찰의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그 심층적 고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일제의 침략주의 역사와 식민주의 담론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두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이를 되새겨야 비로소 피식민지 경험을 공유하고 탈식민주의를 지향하는 동아시아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 수 있다. 나아가 구미의 침략주의 역사와 식민주의 담론을 비판/극복해나갈 방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기기 신화와 국학 그 유산의 해체와 연구 방향

두 저서를 통해서 이태진은 천황제 국가주의 역사학의 유산/계보를 해체해나갈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해체 대상은 식민사학, 식민사관, 그리고 쇼인 사상으로 표상된 국학 계보의 황도론, 황국사관, 대외 팽창론 등을 포함한다. 특히 이들 근대의 계보 일부를 밝힘으로써 얼마나 뿌리 깊고, 가지가 넓은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역사의 간계인가. 일본에서는 요즈음 각종 변태의 계보와 함께 새롭게 발명된 전통, 국민 사조가 격세유전을 거듭하듯 되살아나고,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국적을 가리지도 않고, 거기에 터잡은 일본적 DNA를 활성화시켜 변태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간계를 내파(內破)하기 위해서도 그 해체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나라의 과제이다. 그 몫이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일본적 DNA로 말미암은 황도론/황국사관, 식민사학/식민사관의 가장 큰 피해자인 까닭이다. 이런 일본 전통과 각종 변태의 계보를 ‘철저히, 올바로’ 해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 방향을 몇 가지 제언한다. 먼저, 우리 안의 그릇된 친일 DNA를 없애야 한다. 특히 일본 역사학의 방대한 축적, 치밀한 실증, 화려한 수사 따위에 억눌리면 안 된다. 기존 학문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둘째, ‘망국의 한’과 ‘근대의 주박(呪縛: 주문의 힘으로 속박함)’을 벗어나야 한다. 셋째, ‘전통에 대한 오해, 무지’에 빠진 채 함부로 전통을 논하면 안 된다. 이러한 방향에서 일국사를 넘어선 지역사, 교류사 시점을 세운다. 그리하여 일본사 전체를 해체할 마음가짐으로 연구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 한다. 더불어 그 해체를 위한 독법, 연구 방법론, 이론적 틀(패러다임) 등을 다각적으로 계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와 수고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김봉진
기타큐슈(北九州) 시립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사회대학 외교학과 대학원 석사를 거쳐 도쿄대에서 한·중·일 근대사상사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타큐슈 시립대 교수를 역임했다. 『東アジア「開明」知識人の思惟空間』, 『안중근과 일본, 일본인』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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