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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구실, 글쓰기에 별로 안 좋은 공간
대학연구실, 글쓰기에 별로 안 좋은 공간
  • 유무수
  • 승인 2022.10.1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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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졸리 젠슨 지음 | 임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44쪽

수업준비·학과업무 얽힌 곳을 벗어나서 글쓰기
비슷한 연구가 보이기 시작할 때 글쓰기로 돌입

지식의 최고전문가인 대학교수들은 글쓰기의 달인일까? 미국 털사대에서 교원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졸리 젠슨 교수(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학원생이나 동료 교수들이 사실은 글쓰기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동료 조교수 몇 명은 글쓰기 관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종신교수 심사에서 탈락했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동료는 정년 심사될 책의 출판을 준비하다가 “여섯 주나 되는 여름휴가 동안 처절하게 발버둥 친 끝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라고 한다.  

 

글쓰기의 부담을 줄이고 매일 자주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안한 것은 ①개요, 질문, 다음 단계, 참고문헌, 장별 노토, 투고 계획, 첨가할 말, 감정 환기 파일 등 조직적으로 정리된 일련의 파일을 보관하는 ‘연구 과제 상자’ ②글을 쓸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일기처럼 진술해놓는 ‘감정 환기 파일’ ③학기운영과 관련하여 다른 업무가 쏟아져도 ‘매일 15분 글쓰기’이다. 하루를 실제로 어떻게 보내는지 기록하고,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고 매주 글 쓰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글을 쓰는 공간의 확보도 중요하다.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물리적·정신적으로 일을 하는 공간인 대학 연구실은 글쓰기에 별로 좋지 않았다. 이메일 확인, 수업준비, 학과업무, 학생이나 동료의 방문 등이 얽힌 대학연구실은 물리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정신적으로 근무 중인 공간이기에 생산적인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서재가 아니라 글쓰기와 무관한 물건을 치우기, 화이트보드, 책상과 의자, 그리고 연구과제 상자다. 저자는 이것을 아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자에 따르면 잡무가 많은 대학연구실은 글쓰기에 별로 좋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학술적 글쓰기에서 ‘준비라는 함정’에도 주의해야 한다. 선행연구 범위는 한정되어 있지 않기에 있을 법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준비만 하면서 수개월에서 수년을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자료를 검색하다가 비슷한 연구가 반복해서 보이기 시작할 때 글쓰기로 돌입해야 한다. 첫 문장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첫 문장을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것은 ‘미신’이다. 완성된 글에 꼭 알맞은 첫 문장이 떠오를 때까지 머릿속으로만 글을 쓰려 하지 말고 지면에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엉망으로 갈겨쓰는 ‘사전쓰기(prewriting)’에서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초고에 대해 작가 지망생의 필독서인 『쓰기의 감각』(웅진지식하우스)의 “똥같이 쓴 초고(shitty first draft)”라는 표현을 인용하여 엉망진창인 초고를 일단 마구잡이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교수들은 대체로 남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분석과 비판을 당하는 것에 쉽게 화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저자의 경험이었다. 첫 책을 집필할 때 25쪽의 비평은 괴한에게 습격당한 느낌이 들게 했고 낙심했다. 어떤 교수는 자신이 최선을 다한 원고의 수정제안을 받았을 때 몇 년 간 글을 쓰지 못했다. 저자는 저명한 학자가 제시한 수정 제안서를 수용하지 않았던 경우에 대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수 년 후에 가서 후회했다고 고백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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