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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여행’부터 무한한 ‘상승’까지…작품과 하나 된 시인
원망의 ‘여행’부터 무한한 ‘상승’까지…작품과 하나 된 시인
  • 김재호
  • 승인 2022.10.2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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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악의 꽃』 샤를르 보들레르 지음 | 유혜림 옮김 | 푸른사상 | 400쪽

우울·불행의 시인, 그의 주장을 존중하며 작품에 접근 
인생은 비관적이었으나 소외된 것들에 대한 연민 느껴

“어느 날 아침 우리는 떠난다, 머리는 불꽃으로, / 마음은 원한과 씁쓸한 원망으로 가득한 채,” 최근 푸른사상에서 번역 출간된 샤를 보들레르(1821∼1867)의 『악의 꽃』(1857)에 나오는 시 「여행」의 한 구절이다.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다. 다들 어딘가로 떠나는데 마음엔 원한과 원망이 가득하다. 

가수 임재범은 「여행자」에서 “버티는, 이 시간의 끝에 / 뭐든 되지 못하고 사라질까봐”라고 노래한다. 원한과 원망은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 아닐까. 방송인 조승연 씨 역시 『악의 꽃』을 추천했다. 그는 인생은 여행이며 방랑자의 삶과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어디서나 보이는 인간의 죄악과 그저 그러한 인간의 비슷한 모습 때문이리라.  

 

“시인 보들레르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주장하는 말을 존중해서 그의 작품들에 접근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른 결과물을 얻었다.” 유혜림 옮긴이는 『악의 꽃』의 여러 번역본이 있지만, 새로 번역서를 내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보들레르의 쓰기에서 진실의 구조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들레르에게도 사랑은 시의 동기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보들레르가 실제로 만났던 여인들은 아름다움과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 반대의 모습이 표현되기도 했다. 옮긴이 유혜림 박사는 “꿈속의 여인과의 사랑은 시인을 기쁘고 행복하게도 했지만 그를 고통스럽게도 했는데 사랑에 대한 개념은 시인 보들레르에게 매음에의 취미”라며 “이것은 육체적인 의미의 매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의 매음으로 그에게는 예술을 의미한다”라고 적었다. 유 박사는 “낯선 표현이지만 우리가 타인과 교감하는 것으로 시인은 매음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들레르의 삶은 누구나 그렇지만 평탄치 않았다. 62세의 아버지와 28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보들레르는 6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7살에 어머니는 재혼했다. 보들레르는 대학에 입학할 때 성병에 감염됐다. 22세에 유산의 절반을 소비해 금치산 선고 판결을 받았다. 특히 한 사랑과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하고 여러 여인들과 동거하고 이별하기를 반복했다. 보들레르의 유일한 안식처는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와 바그너(1813∼1883)였던 것 같다. 

보들레르의 시들 중에는 비관적인 것들이 많다. 「우울」이라는 제목들의 시에서는 “나는 시든 장미꽃으로 가득한 낡은 규방이다.”, “나는 비 오는 나라의 왕과 같다.”, “하늘은 밤보다 더 슬픈 검은 낮을 우리에게 들어붓는다.” 등으로 노래했다. 「불운」에서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암시라도 하듯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구나.”, “많은 꽃들이 깊은 고독 속에서, 비밀처럼 그 부드러운 향기를 마지못해 내뿜는다.”라고 적었다.

옮긴이에 따르면, 보들레르는 “작품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쓰려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연인들의 죽음」, 「가난한 자들의 죽음」, 「예술가들의 죽음」에서는 보들레르의 연민이 느껴진다. 그 대상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들이다. “장밋빛과 신비한 푸른빛 어우러진 어느 저녁에, / 작별인사로 가득 찬, 긴 흐느낌처럼, / 우리는 유일한 빛을 주고받으리라.”, “아! 위로하는 것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죽음이다.”, “우리는 치밀한 음모에 우리 영혼을 사용하리라, / 그러면 묵직한 뼈대가 수도 없이 파괴되겠지”.  

보들레르의 시는 우주로까지 나아갔다. 1977년 발사된 탐사선 보이저 1호에는 ‘골든 레코드’가 담겨 있다. 골든 레코드에는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편지부터 보들레르의 시 「상승」이 들어있다. 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별이 반짝이는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 // ... 깊은 무한을 기쁘게 누비고 다니는구나.”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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