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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차별 넘어 노벨상 탄 성소수자들
동성애 혐오·차별 넘어 노벨상 탄 성소수자들
  • 전준
  • 승인 2022.10.25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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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 ② 성소수자와 노벨상
올해 노벨화학생, 생리의학상 수상자들

과학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안목이 필요할까.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소통이 힘들 때도 있다. 이에 화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전준 충남대 교수가 ‘과학의 과학’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과학기술을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성찰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올해 성소수자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2명의 과학자를 통해 과학사회의 차별과 문제점을 다룬다. 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버토지와 페보는 셀 수 없는 차별의 장벽들에도 불과하고 과학자 사회의 지식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한 매우 예외적인 사례들로 읽혀야 할 것이다.”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각 분야의 대가들은 스톡홀름에서 걸려오는 전화 소리를 기다리며 밤잠을 지새운다. 올해의 노벨 화학상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손쉽게 고효율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클릭 화학(Click chemistry)’ 분야의 선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최상의 반응 효율과 최적의 반응 메커니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클릭화학은 녹색 화학의 핵심 목표와 맞닿아 있다. 지난 호에서 녹색 화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었던 칼 베리 샤프레스는 이번에 생애 두 번째의 노벨 화학상을 목에 걸었다. 공동 수상자인 케롤린 버토지와 모르텐 멜달도 클릭 화학의 개념을 정립한 선구자들로 꼽힌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거머쥔 케롤린 버토지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왼쪽)와 스벤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 구소 박사는 성소수자로, 압도적으로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사진=노벨위원회, 위키피디아

무엇보다도 케롤린 버토지는 평생동안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워왔으며, 특히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동료 성소수자 과학자들에게 응원이 되어온 과학자였다. 버토지는 미국 화학회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학부생 시절 실험실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때 나는 여성이 특정 분야의 과학 활동으로부터 배제 되거나 혹은 그 진입이 늦춰진다는 점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매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했던 가족 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또한 그녀는 동성애자로서 겪어온 차별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1980년대, 학생이었던 자신이 겪었던 동성애 혐오는 직설적이고 적대적이었던 반면, 지금의 과학계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성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가치관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비록 미국 과학계에서만큼은 차별과 혐오가 점차 누그러지고 있지만, 버토지는 전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이 이런 안전한 상황에 놓여 있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녀는 동료 성소수자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라.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유전자 분석 연구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벤테 페보 또한 공개적으로 알려진 양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이다. 그의 아버지 수네 베르스트룀은 198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는데, 페보 교수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 때문에 이 부자 노벨상 수상자들의 가계도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노벨 문학상을 제외하면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로 성소수자들이, 그것도 한 해에 두 명이나 등장한 것은 역대 최초의 일이다. 이것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과학자 사회의 차별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과학자들이 증가하기 때문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분분하다.

 

4% 성소수자들, 차별 못 견디고 떠날 계획 세운다

“여성·장애인·이민자 과학자는 한국사회에서 어떤 위상인가? 그들은 과연 우리나라 과학계의 허들을 모두 넘고 ‘동료’ 과학자의 위치까지라도 도달할 수 있을까? 과학과 차별은 먼 단어 같지만 사실 가까이 붙어 있는 단어다.”

 

 

다양한 사회조사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성소수자로 분류하는 LGBTQ 집단의 수는 전체 인구의 최소 4%에서 10%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12인 중 두 명이 성소수자인 것은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이들이 과학계에서 또한 모종의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거의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출판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과학자 사회의 차별을 경험한다. 미국의 2만5천324명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과학자들 1천6명은 이성애자 과학자 동료들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고, 직업 선택의 기회로부터 박탈당하며, 정당하지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건강이상에 시달리고, 따라서 과학계를 떠날 확률 또한 높다. 비슷한 재능을 가진 과학자들 중에서도 성소수자는 유독 극소수만이 그 가능성을 꽃피우게 된다는 뜻이다.

 

과학자 사회는 공평무사·이상적 공동체아냐

과학자 사회가 공평무사하고 아무런 편견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일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과학자 사회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과학자들 사이의 불평등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패턴을 닮아 있다.

따라서, 소수자 과학자들의 빼어난 성취에 대해 조명하는 것은 과학자 사회가 비로소 차별없는 곳이 돼가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깊게 누적돼온 차별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빛을 본 극소수의 롤모델들을 발굴해 내고, 이를 통해 과학자 사회의 성찰성을 요구하기 위한 작업이다.

캐롤린 버토지와 스벤테 페보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들의 노벨상 수상이 비로소 과학계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졌다는 신호로 읽혀서는 안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미국 인종 차별의 종언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과학자 사회에서의 리더십을 감안하면 버토지와 페보의 노벨상 수상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과학계에는 과학자들의 영향력을 정량화 한 ‘h-인덱스’라는 수치가 있는데, 캐롤린 버토지의 h-인덱스는 114, 스벤테 페보의 h-인덱스는 132이다. 분야에 따라 상이하긴 하지만 평균적인 과학자들은 커리어 단계에 따라 대체로 3에서 20 사이의 h-인덱스 값을 보유하고 있다. 60 이상의 h-인덱스 값을 보유한 과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버토지와 페보가 일생에 걸쳐 동료 과학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많이 저술했다는 뜻이 된다. 즉, 버토지와 페보는 셀 수 없는 차별의 장벽들에도 불과하고 과학자 사회의 지식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한 매우 예외적인 사례들로 읽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과학계는 어떤가?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의 그 어떤 언론사에서도 버토지와 페보가 성소수자라는 점은 보도하지 않았다. 마치 이들의 성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면 노벨상의 권위가 깎여나갈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만 같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드러내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은 사회적 권력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 한국의 노벨상 저널리즘은 마치 올림픽 보도와 같이 1등에 대한 집착으로 물들어 있다.

 

사회 권력 재현하는 저널리즘과 과학보도

노벨상은 과학적 성취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로 주어지는 상도 아니며, 과학계의 누적된 불평등이 직설적으로 관찰되는 상이기도 하다는 점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노벨상은 집착의 대상으로 다뤄지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과학계에 일말의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주는 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더 가치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소수자들은 과학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과학자들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어디에 있나? 그들은 과연 우리나라 과학계의 허들을 모두 넘고 ‘동료’ 과학자의 위치까지라도 도달할 수 있을까? 과학과 차별은 먼 단어 같지만 사실 가까이 붙어 있는 단어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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