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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가능성
미래 가능성
  • 최승우
  • 승인 2022.10.27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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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72쪽

미래는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겨져 있으며,
따라서 해석 과정을 통해 선택 및 추출되어야 한다!

저자 프랑코 베라르디에 따르면, 우리는 무능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지구적 전쟁과 전 지구적 금융, 인종·종교·성의 정체성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본 사이에 놓인 우리는 너무도 절실히 요구되는 근본적 변화를 도출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현재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은 한편의 신자유주의 세력과 다른 한편의 정체성 정치 주도자들이 주도하는 전쟁터일 뿐이다. 우리는 현재의 교착 상태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해방적 비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정치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규정하는 전 지구적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있을까?

영감으로 가득한 이 책에서 저명한 이탈리아의 이론가 프랑코 베라르디는 현재를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세 가지 개념, 즉 가능성·에너지로서 능력·형식으로서 권력에 대한 근거 있으면서도 상상력 풍부한 분석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하려 한다.

가능성이란 현재의 세계 구성 체제에 새겨진 내용이다. 가능성은 현재를 구성하는 요소가 여럿이고 그것들의 가능한 결합 방식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많이 존재하지만, 마찬가지로 현재 안에 새겨진 불가능성에 의해 제한되는 까닭에 무한하지는 않다. 이러한 복수의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가능성이 그 안에서 전개되는 환경적 사건과 만나 선택됨으로써 현실의 것으로 형태화한다. 능력이란 가능성을 전개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주체적 에너지다.

능력은 무정형의 혼돈 속에 놓여 있어 서로 충돌하고 진동하는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자기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실현함으로써 현실을 변형하는 주체적 조건이다. 그러나 능력을 지닌 주체는 현재 속에 새겨진 가능성의 출현을 저지하는 권력에 부딪친다. 권력이란 현재의 구조 안에 규정 능력으로 함축되어 선택하고 배제하는 힘이다. 권력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의 선택과 집행인 동시에 여러 다른 가능성의 배제와 감춤이다.

따라서 각각의 역사적 분기점마다 가능성의 범위는 권력에 의해 제한되는 동시에 새롭게 떠오르는 주체성에 의해 열린다. 주체성은 자신의 인지 활동을 통해 획득한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가시적인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은 현실 속에 놓여 있는 기존의 선택 메커니즘을 자동화함으로써 가능성의 출현을 저지하고 또한 인지적 활동마저 논리적이고 기술적인 자동 사슬에 내맡긴다. 그리하여 베라르디는 가능성으로서 현실 속에 접혀 있는 해방에 이르는 길은 그 가능한 것이 권력 구조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현실로 펼쳐질 수 있다고 시사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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