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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삶
계산된 삶
  • 최승우
  • 승인 2022.10.27 2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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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차녹 지음 | 김창규 옮김 | 허블 | 384쪽

근미래의 사무실에서 인간의 경계에 대해 대담하게 질문하는 SF
특파원 이력 과학 전공 천재 작가의 도발적인 데뷔작

인간의 범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 어디에서 끝날까? 종교계는 연명치료의 경계를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규정하는데, 신학에서 신과 인간의 가장 닮은 점을 자유의지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를 지닌 복제인간은 어떨까? 저자는 인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근미래의 사무실에서 구한다. 주인공 제이나는 효율적인 업무 처리 목적으로 조합된 유전자로 설계되었다. 그녀는 임대된 회사의 자산으로서 자신과 같은 계급의 시뮬런트(복제인간)가 아닌 인간과의 친교는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한 남자가 제이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는 구 문명의 찬란한 유산 중 하나인 종이책과 내려 마시는 커피를 즐기는 법을 제이나가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제이나는 보통 인간들처럼 자신만의 취향을 형성해가는 동시에, 데이브와의 금단의 관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처지를 위태롭게 만든다. 회사는 동선을 비롯한 모든 자유를 침해하고 있지만, 제이나는 회사가 허가한 경계 안팎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기억의 비밀 정원을 가꾸어 나간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부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에 이르기까지 SF 작가와 팬들이 가장 몰두하고 열광하는 주제 중 하나다. 영국 SF협회 최우수 단편상(BSFA)과 아서 C. 클라크상을 수상했고, 가디언 선정 최고의 SF 작가로 뽑히는 등, 영국 국민들이 사랑하는 SF 작가 앤 차녹.

저자는 환경과학 전공으로 도시 계획을 공부한 뒤 아프리카, 중동 및 인도 전역을 광범위하게 취재하며 《가디언The Guardian》,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 등 저명한 매체에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수단, 케냐에서 특파원으로 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앤 차녹은 필립 K. 딕과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읽고 SF의 세계로 입문했다. 한국에서 초역된 앤 차녹의 데뷔작 『계산된 삶』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 SF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계산된 삶』은 가장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신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키치 골든 텐타클상에 최종 후보로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SF를 쓰게 된 계기가 된 작가 필립 K. 딕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저널리즘 이력이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온 앤 차녹은, SF로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저항을 주된 주제로 다룬다. 『계산된 삶』에서는 인간과 다름없는 능력을 지녔으나 혐오와 테러의 대상이 되는 시뮬런트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비정한 미래 사회의 모순에 저항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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