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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 세상이 두려운 이유
가시박 세상이 두려운 이유
  • 박혜영
  • 승인 2022.10.3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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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인하대 교수

가시박은 북미가 원산지인 박과의 덩굴식물로 주위 식물을 지지대 삼아 자란다. 한해살이 식물이지만 한 그루에서 2만 5천개가 넘는 씨앗이 달릴 정도로 번식력이 위압적이다. 이파리는 넓고 많으며, 줄기의 성장 속도는 너무 빨라 일단 가시박이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식물을 뒤덮어버린다. 당연히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다른 식물들은 그 밑에 깔려 모두 고사하게 된다. 가시박 넝쿨은 가시로 인해 동물조차도 접근이 어렵기에 결국 저 혼자만 사는 녹색 세상을 만든다. 마치 골프장처럼 모든 산야가 녹색 사막으로 바뀌게 된다. 

일전에 강원도에서 가시박이 문제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여행을 해보니 전남 고흥과 가거도에도, 경북 경산의 운문댐에도, 그리고 심지어 제주의 도로변과 하천가에도 가시박이 무섭고 두려울 정도로 온통 뒤덮고 있었다. 언뜻 보면 사방팔방이 푸르른 녹색이라 좋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빽빽하게 펼쳐진 가시박 이파리 아래 키 작은 동백나무며, 키 큰 소나무며 모두가 꼼짝 못 한 채 질식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럴 때는 손을 움직이는 덩굴식물만큼 거침없는 침략자가 없으며, 도망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만큼 가여운 운명도 없다. 심지어 가시박은 자신이 살 공간과 영양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다른 식물을 죽이는 물질을 뿜어내기조차 한다. 가히 극상의 생태교란 식물답다고 할 것이다.

가시박이 두려운 이유는 다른 존재들과 공생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타고 올라가겠다는 한 가지 욕망만 추구하느라 다른 모든 소중한 욕망을 질식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가시박이 뒤덮으면, 풀은 나무 아래 살고, 꽃은 새에 기대어 살며, 새는 큰 나무에 둥지를 짓고 사는 공존의 법칙이 모두 무너진다.

끝도 없이 올라가겠다는 생존본능,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겠다는 탐욕, 혼자서만 빨리 성장하겠다는 경쟁심, 이런 것들로 인해 다채롭고 아름답던 생태계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막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두렵지 않겠는가?

영국 극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드라마 「파우스트 박사의 비극」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무한한 지력을 얻는 대신 영혼을 저당 잡힌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어찌하여 지옥에서 나왔느냐고 묻자 악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는 한계(limit)가 없다. 어느 한 장소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 천국이 아닌 곳은 모두 지옥이다.” 말하자면 파우스트처럼 유한한 실존을 거부하고 무한한 권력과 부를 탐한다면 어디든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모른 채 탐욕을 부리면 바로 마음은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이 논리로 보면 무한 경쟁, 무한 개발, 무한 소비, 무한 축적을 추구하는 바로 우리 시대가 그야말로 한계가 없는 장소, 즉 지옥이 되는 것이다.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다. 공존과 공생의 원리를 던져버리고 가시박처럼 승자독식의 경쟁기술만 키워낸다면 수많은 약자들은 모두 도태될 수밖에 없다. 가시박 같은 강자들만 살아남는다면, 그것이 중고등교육이든 대학교육이든 모든 교육 현장 역시 다양성은 사라진 채 끝없이 올라서려는 가시박들의 사막이 될 것이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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