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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정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 송석랑
  • 승인 2022.11.10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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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㉞_바츨라프 하벨
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극작가 겸 초대 대통령이었다. 사진=위키피디아

정치의 텔로스(telos)가 더 나은 사회에 있는 것이라면, 정치는 사회적 현실의 체제를 구성·지탱하는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그 체제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실패 내지 불가능성을 부단히 해소해 가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체코의 초대 대통령 하벨이 정치를 두고 “우리 자신과 세계를 향상시키는 불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하며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의 리더십이 취해야 할 윤리적 전망을 달리 가리킨 것도 사실은 그런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정치는 불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과 어울릴 때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두 말의 의미가 섞이지 못할 경우, 우선 전자(정치는 가능성의 예술)는 정치가 자신의 불가능성을 은폐하며 선동의 예술로 전락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그 ‘가능성’이 사실은 “투기, 계산, 모의, 뒷거래, 조작”과 같은 기만의 기재와 내통하며 억압의 구조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자(정치는 불가능성의 예술)는 정치가 자신의 새 가능성을 모색할 출구를 상실하는 절명의 사태와 직면하게 된다.

정치가 ‘사회적 현실을 지탱하는 체제의 권력과 그 체제의 실패를 추궁하며 새 체제를 요구하는 저항의 자리에서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견해의 타당성을 고려하면, 정치의 발전적 계기는 ‘정치의 가능성, 즉 체제의 이상’에 가려진 환상을 폭로할 ‘정치의 불가능성, 즉 체제의 실패’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되 사회적 결핍을 창의적 타협 내지 조화의 이름으로 온전히 ‘통제,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결핍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불가능성 혹은 실패’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와 우리의 정치를 ‘탈구,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능성의 예술이어야 할 것이다.

마치 표현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표현하는 시(詩)와 같이 정치 현실의 실패(불가능성)를 실패(불가능성)로 드러내 사회적 현실의 체제의 균열을 누설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정치, 즉 ‘불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누구보다 먼저 선명히 가리킨 이는 라캉이었다.

실제로 그는 『세미나20』에서 ‘대타자’(상징계)에 상응하는 ‘현실’(담론)의 실패구조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담론에 앞선 현실은 없다. 우리의 모든 현실은 담론으로 성립하며, 이 담론 안에는 실패가 구멍처럼 존재한다.”

정치 현실 역시 담론의 회로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라캉의 이 진술에 함축된 의미는 정치의 장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정치 현실을 직시하되, 그것을 존립케 하는 이상의 환상이 아닌 그것의 실패를 보는 정치의 리더십이 기꺼운 것은 그것이 한때 진보의 유력한 기재였던 ‘시적 리얼리즘’의 예술성을 달리 계승할 저항의 정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취할 이 ‘시적 리얼리즘’의 예술성은 객관적으로 구성된 정치 현실의 가능성(이상)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통해 그 가능성의 환상을 걷고 그 가능성의 불가능성(실패)을 표현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정치의 불가능성은 객관적인 정치 현실로서가 아니라, 늘 그것의 실패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치의 리더십이 감당해야 할 부단한 이중의 수고, 부연하자면 불가능성(실패)을 정치로 불러들여 가능성(정치의 새 구성)을 실현하고, 새로이 구성된 정치에서 재차 사회적 결핍으로 드러날 정 치의 실패(불가능성)를 읽어내며 다시 탈주를 준비하는 수고의 반복을 가리킨다. 

정치주체는 숱한 사회적 결핍들에 공감하며, 현실정치의 구멍 혹은 실패로 나타날 불가능성의 의의를 증폭, 억압의 현실을 허물어 새 정치 현실의 구성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호주관적 연대의 정서를 시적 표현의 수준에서 벼려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에 필요한 것이 보다 진정한 정치의 리더십이라면, 그것은 정치의 환상을 가로지르며 정치의 불가능성을 부단히 가능케 할 시적 주체, 달리 말하자면 정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에 선 자의 리더십일 것이다. 

송석랑 목원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한국외대에서 철학을 전공(학사, 석사)하였고, 충남대 대학원에서 실존현상학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역서로 『인문예술, 세계를 담다』(공저 2022), 『프랑스철학의 위대한 시절』(공저 2014), 『현상학, 시적감각의 지성』(2012), 『언어와 합리성의 새 차원: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2004), 『정신과학 입문: W. 딜타이』(역서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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