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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문을 하고 있는가?
왜 학문을 하고 있는가?
  • 권혁범
  • 승인 2022.11.1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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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권혁범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나는 지방대 출신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흔히 얘기하는 지방출신의 입지는 자칫 잘못하면 그야말로 형편없는 자신의 배경과 실력을 대변하는 얘기로도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대 대학원생들에게 이와 같은 설명은 그대로 대입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회학도로서 사회학이란 학문은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회현상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사회의 변화가 필요함을 요구하는 것이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내가 사회학을 소중히 여기고 공부하는 이유라고 자부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초학문의 연구자를 꿈꾸는 대학원생 개개인은, 스스로가 꿈꾸는 학문적 포부와 이상적 가치가 존재할 것이며, 그들 나름대로는 지방에 살면서(혹은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방에 있는 대학의 기초학문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사회학과 같은 인문사회 계열의 순수 기초학문은 분명 위기에 직면해있다. 특히,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기초학문의 위기는 폐과 및 통폐합 등의 과정을 통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기초학문을 다루는 학과들이 폐과되거나 통폐합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라는 점, 달리 표현하자면 학부생 위주의 취업률에만 집중하고 심지어 학교의 홍보를 취업률 위주로 행하는, 이른바 취업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정부의 정책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심화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의 국가별, 분야별 자본의 집중이 중요해지면서 이를 지키기 위한 각국의 경쟁 과정에서 데이터 및 AI 산업,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첨단 IT산업과 같이 국가의 경제 규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인문사회계열(기초학문)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미미하며, 기초학문에 대한 중요성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빗대어 보았을 때, 한국에서 기초학문을 전공한다는 것은 학부,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막론하고 상당한 모험을 전제하는 것 같다. 물론 관련 학문 분야에서 굉장히 뛰어난 역량과 성과를 이루어내는 분들은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으나 대다수의 전공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취업시장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 학문을 해서 어디에 취업을 할 수 있느냐?” 혹은 “그 학문은 무엇을 하는 학문이냐?”라는 질문을 숱하게 듣게 되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또한 이공 계열과 같이 고정적으로 진행되는 실험이나 연구 프로젝트가 없거나 적은 경우가 다수이기에(특히 지방의 경우) 만약 대학원을 진학하여 석사 및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될 경우 대부분은 본인이 낸 대학원 등록금만큼의 인건비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녹록치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보다 깊은 공부를 위해 저와 같이 기초학문 분야의 대학원생을 스스로 지원하는 분들이 꾸준히 계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던 것처럼, 연구자를 꿈꾸는 대학원생 개개은, 스스로가 꿈꾸는 학문적 포부와 이상적 가치가 존재할 것이며, 그들 나름대로는 대학의 기초학문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학도들의 학문적 의지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꺾을 수 없고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진정으로 하고픈 말은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무시당할 수도 있는, 특히 지방대에서 학문의 길을 정진하고 계시는 선후배 연구자분들이라면 또 다른 무기를 지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들의 입장에서 기본은 “내가 왜 이 학문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학문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고, 왜 소중한가?”를 자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구 환경과 불투명한 진로를 감내하면서 진정한 학문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권혁범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22년 2월 「대구·경북 대졸 청년의 취업이동 요인 분석」이라는 주제로 경북대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2년 9월부터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현재는 돌봄노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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