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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질문에는 여러 답이 공존”…지식을 의심하라
“과학의 질문에는 여러 답이 공존”…지식을 의심하라
  • 김재호
  • 승인 2022.11.17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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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생명을 묻다』(이른비 | 492쪽) 쓴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질문에는 단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책에서 보이고 싶었다. 
모든 연구자들이 자신이 확신하는 모든 지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의심의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생물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을 정도로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 화제다. 바로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약학과)의 『생명을 묻다』이다. 제목은 ‘답하다’가 아니고 ‘묻다’이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처럼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15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성경부터 영화, 그림, 문학, 철학, 예술 등을 동원해 생명의 비밀을 파헤친다. 생명(사)에 관한 한 편의 파노라마 같다. 

『생명을 묻다』는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정 교수는 “과학 분야의 책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평범한 독자들은 선뜻 책을 집어 들지 않는 편”이라며 “이번 기회로 인해 누구나 한 번 꼭 도전해보고 싶은 책으로 알려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학술 논문은 많이 써왔지만 대중서는 처음 시도하는 셈이라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서술해야 하는가가 가장 고민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생명’의 15가지 질문, 한 편의 파노라마로

『생명을 묻다』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들이 있다. “생명은 존재(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생명을 대하는 저자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약학과·사진)의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 9일, 정 교수를 덕성여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약학과)는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생명과학부에서 분자유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와 베일러 의대에서 암 생물학과 분자유전학을 연구했다. 현재 여러 독서토론 모임을 이끌며 과학과 다른 분야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김재호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 교수는 이같이 답했다. 대중들은 과학이라면 가장 정확하며 신뢰할 만한 학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그러려면 과학 이외의 접근이 필요했고, 그것은 과학자로서는 쉽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는 시도라는 염려 또한 있었다”라며 “하지만 역사적으로 생명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많은 철학자, 사상가, 문학가들의 입을 빌린다면 좀 더 신뢰할 만하면서도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 명의 과학자로서 과학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스토리텔링은 인문학의 도움을 받는 과학 이야기, 때로는 신학적인 사고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는 어찌 보면 한 명의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라는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일부 동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 교수는 “과학자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이해하려 할 때 건강한 의미의 회의주의적 시각을 늘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자평한다”라며 “과학자들은 비과학적 사고에 대해 회의주의적이어야 한다고 늘 주장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런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은 자주 간과되고는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본주의 필요하나, 인간중심주의는 지양

『생명을 묻다』가 돋보이는 점 중 하나는 과학철학적 고민들이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췄다. 철학적 사고 훈련도 상당한 듯 정 교수의 연구실에는 철학 책들도 많았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복과 안전을 우선시 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길 수 있는 인본주의적 사고가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쉬운 인간중심주의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 또한 필요할 것”이라며 “이 모든 가치는 과학 자체에서 나오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 교수는 “생명의 동등한 가치와 존엄에 대해 깊이 생각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라며 “이런 점에서 과학에는 반드시 철학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과학을 수행하거나 해석하는 데 있어 철학을 강조했다면, 그것은 철학이라기보다 ‘윤리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라며 “꼭 윤리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철학은 과학을 배우고 수행하는 데 있어 유연한 사고를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책에서 ‘환원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했다. 반면, 환원주의에는 나쁜 환원주의와 좋은 환원주위가 있고, “좋은 환원주의자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그 부분들의 특성과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모든 자연과학이 이처럼 건전한 환원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환원주의가 아닌 과학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는 반론(「낡은 논쟁 대신 새로운 앎이 필요하다」, <교수신문>, 2008년 11월 24일)이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좋은 약도 엉뚱하게 쓰거나 과용하게 되면 몸에 좋을 리 없듯이, 환원주의도 그것을 무리하고 지나치게 적용하고 해석하는 데 가져다 쓰려 한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나도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환원주의적 사고와 연구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생명의 경우는 생명이 가진 창발적 속성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연구가 언제나 정확한 분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라며 “많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와 뇌를 생명 그 자체로 보려 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생명 현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전부를 설명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그 자체로 나쁜 환원주의는 없다. 나쁘게 적용하는 환원주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묻다’라는 제목처럼,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질문에는 단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책에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Nullius in Verba’, 즉 ‘누구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라는 런던 왕립학회의 모토를 강조했다. 과학 분야의 의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자가 가장 잘 해결할 것이라는 편견 또한 버릴 필요가 있다. 평범한 내가 오늘 새롭게 던진 질문이 더 좋은 답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좋겠다.”

 

특히 정 교수는 “우리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변해가고 있는 ‘과정 중의 존재’를 의미할 때,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의식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진화를 말할 때는 의식의 진화를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14장에서 강조했다. 생물학에서 ‘의식’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신 연구에서 의식은 어느 수준까지 밝혀졌을까. 정 교수는 “우리는 아직 무엇이 의식을 만들어내는지, 의식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성급한 몇몇 과학자들은 벌써 의식과 기억을 디지털화해 불멸의 존재로 만들거나 더 진보된 형태로 진화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 모든 시도들은 생명이 오로지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확신에 근거한다”라고 답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유물론이 아직까지 생명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론 물질이 아닌 어떤 것이 관여한다는 증거 또한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 우주론의 경우 우주를 구성하는 것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고작 4%에 불과하며 물리적 현실의 96%가 암흑 에너지와 같이 분명치 않은 존재로 되어 있다는 가설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마당에 생명 현상을 물질적 토대에 기초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정 교수의 다음 집필 계획은 뭘까. 그는 “유전자와 유전 현상에 관련된 오해의 문제, 유전학의 발전을 이끌어 낸 역사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대학·교수사회에 대해서 “먼저 질문을 던지고 길을 열었던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그 길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는 나와 같은 후배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모든 연구자들이 자신이 확신하는 모든 지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의심의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소감을 말해달라.

아무리 독서 인구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출판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도 하루에 200권 가량, 일 년에 6~7만 권의 새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눈에 띄지 못하고 금세 사라지는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개인적으로 뜻한 바 있어 나름 노력을 많이 들여 이 책을 썼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책 위에 또 한 권의 평범한 책을 추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이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대단히 감격스러운 심정입니다. 특히 과학 분야의 책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평범한 독자들은 선뜻 책을 집어 들지 않는 편인데, 이번 기회로 인해 누구나 한 번 꼭 도전해보고 싶은 책으로 알려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생명을 묻다』 집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혹은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챕터가 있나.

학술 논문은 많이 써왔지만 대중서는 처음 시도하는 셈이라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서술해야 하는가가 가장 고민이 되었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생물학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으로 쓴다면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며 많이 팔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기도 하고요.) 제가 평소에 자주 느끼는 바로는, 과학 분야에서 인기 있는 대중서들의 경우 대부분 어려운 지식을 쉽게 전달해주는 데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수준이 낮다는 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은 대부분 피하고 흥미로운 주제만을 찾아서 ‘이러이러한 원리를 알면 생명의 복잡한 현상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라며 독자를 유혹하는 것이지요. 

저는 여러 생물학 책에서 당연한 듯 서술하고 있는 지식의 이면에 아직 과학적인 방법론으로는 확실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과학이라면 가장 정확하며 신뢰할 만한 학문이라고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과학 이외의 접근이 필요했고, 그것은 과학자로서는 쉽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는 시도라는 염려 또한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생명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많은 철학자, 사상가, 문학가들의 입을 빌린다면 좀 더 신뢰할 만하면서도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문학의 도움을 받는 과학 이야기, 때로는 신학적인 사고도 배제하지 않는 스토리텔링은 어찌 보면 한 명의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라는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일부 동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특히 화학적 진화에 대한 추측을 다룬 4장과,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허와 실을 다룬 8장과 9장을 쓰면서 가장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기계론이 되어버린 생물학의 현 모습을 우려스럽게 비판한 11장도 쓰면서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이해하려 할 때 건강한 의미의 회의주의적 시각을 늘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자평합니다. 과학자들은 비과학적 사고에 대해 회의주의적이어야 한다고 늘 주장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런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은 자주 간과되고는 하지요.

 

정우현 교수는 과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철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봤다. 사진=김재호

△책을 읽어보니, 철학에 관심이 매우 많고 공부를 하는 듯하다. 학문을 구분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로서 철학이 교육, 연구, 집필 등에서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책 속에서 철학자들의 생각을 많이 소개하고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보니 그렇게 평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만,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철학을 정식으로 접하거나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평범한 과학자에 불과합니다. 제가 과학을 수행하거나 해석하는 데 있어 철학을 강조했다면, 그것은 철학이라기보다 ‘윤리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얻어진 결론은 누가 봐도 동의할 만한 진리로 여겨져도 된다는 믿음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똑같은 데이터를 얻고도 그것을 바라보는 과학자마다 해석이 다 다를 수 있으며, 그런 이유로 논쟁이 계속되기도 하고, 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이 결론으로 맺어지기도 합니다. 

과학의 이론적인 면을 다룰 때도 이럴진대, 그로부터 얻은 기술을 응용하는 문제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인간에게 더 좋을 것인지에 대해서 과학자들의 의견이 같을 리 없습니다. 특히 생명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인공지능 개발과 인공생명의 창조, 그리고 트랜스휴머니즘 등의 주제는 과학이 선사하는 기술적 진보에 취해 따라가기만 한다면 법이나 규범으로 정하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복과 안전을 우선시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길 수 있는 인본주의적 사고가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쉬운 인간중심주의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이 모든 가치는 과학 자체에서 나오기 힘듭니다. 생명의 동등한 가치와 존엄에 대해 깊이 생각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에는 반드시 철학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꼭 윤리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철학은 과학을 배우고 수행하는 데 있어 유연한 사고를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를 이해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맹목적인 연구방식에 ‘왜’, ‘어째서’를 궁금해하는 습관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금세 답을 얻을 수 없는 어려운 철학적 문제임을 알지만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선 ‘환원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반면, 환원주의에는 나쁜 환원주의와 좋은 환원주위가 있고, “좋은 환원주의자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그 부분들의 특성과 상호작용에 주목합니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모든 자연과학이이처럼 건전한 환원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환원주의가 아닌 과학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지요”라는 반론이 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고 기사: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7304

좋은 환원주의와 나쁜 환원주의를 굳이 구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추구하는 환원주의적 방법이 좋은 것이라 믿고 있지만 타인으로부터는 나쁜 환원주의라고 오해받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닐까요? 하지만 환원주의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마치 약에는 좋은 약도 있고 나쁜 약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큰 의미가 없는 시도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약이란 인간에게 필요한 좋은 것인 것처럼, 환원주의도 그 자체로는 과학에 커다란 성과를 가져다 준 좋은 사고방식입니다. 다만 좋은 약도 엉뚱하게 쓰거나 과용하게 되면 몸에 좋을 리 없듯이, 환원주의도 그것을 무리하고 지나치게 적용하고 해석하는 데 가져다 쓰려 한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오겠지요. 저 자신도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환원주의적 사고와 연구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것을 나쁘게 보고 싶을 리 없지요. 

그러나 환원주의는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전부가 아니며,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책에서 지적한 것 역시 환원주의의 한계입니다. 특히 생명의 경우는 그것이 가진 창발적 속성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연구가 언제나 정확한 분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와 뇌를 생명 그 자체로 보려 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생명 현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전부를 설명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처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행동까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진화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자신의 믿음이 어떤 오해를 불러오고 있는지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 나쁜 환원주의는 없다고 봅니다. 나쁘게 적용하는 환원주의가 있을 뿐이지요.

△생명을 ‘묻다’라는 제목처럼, 책은 해답보다는 제대로 질문하는 것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 제대로 질문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때때로 정답을 얻는 것보다 질문을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은 있을지 몰라도 쓸모없는 질문이란 없기 때문이지요. 질문이라는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히 환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생각에 새로운 가지를 칠 수 있도록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첨병의 역할 또한 수행합니다. 정답이 없다는 걸 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내가 뭔가를 궁금해 하기도 전에 답을 제시하며 문제를 쉽게 해결해준다는 유혹의 손길이 많습니다. 유튜브에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질문을 알아서 던지며 다양한 답을 제시하는 영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처럼 타인의 질문을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으로 착각한다면 그 답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내가 생각해 낸 답이 아닙니다. 권위 있는 전문가가 쓴 책이나 그가 하는 말에 의존해서는 그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온전한 해결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질문에는 단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책에서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Nullius in Verba’, 즉 ‘누구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라는 런던 왕립학회의 모토를 강조했습니다. 과학 분야의 의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자가 가장 잘 해결할 것이라는 편견 또한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평범한 내가 오늘 새롭게 던진 질문이 더 좋은 답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생명은 존재(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변해가고 있는 ‘과정 중의 존재’를 의미할 때,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의식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진화를 말할 때는 의식의 진화를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14장에서 강조했다. 생물학에서 ‘의식’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신 연구에서 의식은 어느 수준까지 밝혀졌을까.

우리는 아직 무엇이 의식을 만들어내는지, 의식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성급한 몇몇 과학자들은 벌써 의식과 기억을 디지털화해 불멸의 존재로 만들거나 더 진보된 형태로 진화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시도들은 생명이 오로지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확신에 근거합니다. 저는 이러한 유물론이 아직까지 생명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질이 아닌 어떤 것이 관여한다는 증거 또한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 우주론의 경우 우주를 구성하는 것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고작 4%에 불과하며 물리적 현실의 96%가 암흑 에너지와 같이 분명치 않은 존재로 되어 있다는 가설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마당에 생명 현상을 물질적 토대에 기초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의식은 진화에 있어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여겨집니다. 유물론적 생명관을 가진 과학자들은 의식이 진화로 인해 생겨났다고 보지만,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난 순간 그 의식은 물질적 진화 법칙에서 벗어나는 특이점을 경험합니다. 특별한 목표나 목적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 흘러가듯 변화하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 비물질적 가치를 향해 자유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기이한 존재가 된 것이지요. 저는 이 순간 물질적 의미에서 인간의 진화는 자연적인 의미를 잃었다고 봅니다.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가까운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비교하는 일이 우리의 기대만큼 커다란 지식을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보는 것이지요.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 호모 데우스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이 여전히 물질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 사용한 표현입니다.

△교양과학서, 혹은 대중과학서로서 추후 집필을 계획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생물학 전반의 질문들을 인문학의 영역과 겹치도록 비교적 폭넓게 다룬 저의 첫 번째 책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게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거기서 용기를 얻어 다음 책도 기쁜 마음으로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음 기회에 다루고 싶은 주제는 ‘유전학’입니다. 유전자와 유전 현상에 관련된 오해의 문제, 유전학의 발전을 이끌어 낸 역사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대학/교수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과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연구하시는 모든 학자 선배님들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먼저 표하고 싶습니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길을 열었던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그 길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는 저와 같은 후배들은 존재할 수 없었겠지요. 다만 모든 연구자들이 자신이 확신하는 모든 지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의심의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또한 후배와 제자들에게도 그런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틈나는 대로 추천하고 권장해주신다면 더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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