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4:55 (화)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 최승우
  • 승인 2022.11.11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376쪽

자본주의는 끝났다. 이제 모두를 위한 ‘새로운 미래’ ‘다른 미래’를 구상할 때다!
정치와 교육, 노동과 여가, 인권과 복지가 모두를 위해 작동하는 사회를 바란다면,
자유로운 개인이 자연과 더불어 자치하는 ‘지금과 다른 미래’를 소망한다면,
‘자유?연대?상호협력’을 강조한 사회적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갈등과 혼란 끝에 ‘민주의 이름으로’ 겨우 직선제를 얻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고작해야’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선거의 잣대란 것도 ‘누가 나를 더 부자로 만들어줄까?’에 달려 있다.

부자가 되는,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라니, 이것은 가짜다. 그렇다면 진짜 민주주의도 있을까? 권력이나 자본 같은 불평등하고 강제된 권위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 능력과 수단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사용하는 사회, 자연 속에 어우러져 만인이 자유롭게 자치하는 사회라면 어떨까, 그런 곳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꽃핀 사회가 아닐까?

사실 선거나 정치를 통해 바뀌는 것은 권력 교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국의 상황을 보라. 과학문명의 정점을 찍고 있는 21세기에도 사람들은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독재를 용인하며, 공권력을 동원해 민의를 말살한다.

여기 어디에 자유의 확대와 평등의 확산이 있는가? 가정도 학교도 회사도 여전히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문화마저 양극화되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만 누리는 실정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이 모두가 지배계급인 극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생존에 허덕일 뿐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사는 그런 사람들만 살았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적 아나키스트’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적 아나키스트는 사회를 중시하는 아나키스트로 “개인의 자유는 사회적 연대와 상호협력을 통해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전적 아나키즘의 흐름을 따른 사람들을 총칭한다.

개인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도록 용납하는 사회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기성세대가 만들 수 없다. 젊은이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그런 권위와 권력을 해체한 자유로운 사회를 원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젊은이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은이들 스스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약자를 짓밟고 능력을 인정받겠다는 이기적인 욕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율성을 한껏 발휘하되 불의의 권력에 맞서서 사회적 정의와 공정을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사회적 아나키즘의 핵심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