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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왜 반도체에 목숨을 걸게 됐을까
바이든은 왜 반도체에 목숨을 걸게 됐을까
  • 김종영
  • 승인 2022.11.23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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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④ 반도체의 총균쇠, 크리스 밀러의 『반도체 전쟁』

현대국가는 지식국가이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이 책은 ‘반도체의 빅 히스트리’로 나 혼자만 알고 싶은 사실들로 가득하다. 
21세기의 전쟁은 반도체 전쟁이며 
반도체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세상 모두가 모르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뿌듯한가. ‘인구 4천만의 캘리포니아에는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10개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캘리포니아와 같이 한국에도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10개 필요하다는 명제는 대학의 ‘빅 히스토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4차 산업혁명의 엔진으로서의 대학, 즉 ‘창조권력’으로서의 대학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실리콘 밸리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으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탠퍼드와 버클리라는 세계적인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이 두 대학을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이 두 대학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전국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의 이런 주장이 태평양 건너의 나의 제자에게도 알려졌고 이 제자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인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의 『반도체 전쟁』(Chip War, 2022)을 보내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책이 밀러의 책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필사적으로 대만을 방어하는 이유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의 『반도체 전쟁』 표지

‘이렇게 재밌는 반도체 책이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렇게 감탄했다. 밀러의 책은 반도체의 『총·균·쇠』다. 이 책은 ‘반도체의 빅 히스트리’로서 나 혼자만 알고 싶은 사실들로 가득하다. 이 책은 21세기의 전쟁은 반도체 전쟁이며 반도체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밀러는 미국이 왜 필사적으로 대만을 방어하는지, 어떻게 소련은 스파이를 이용해서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빼내었는지, 실리콘 밸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한국 반도체는 어떻게 일본 반도체를 극복하게 되었는지, 왜 바이든이 갑자기 반도체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지(결과적으로 윤석열도 같이 목숨을 걸게 되었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설명한다.  

나는 한국에서 출판된 반도체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 보았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책들은 반도체 분야의 기술자들이나 교수들이 쓴 책으로 주로 기술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밀러의 책은 모리스 창(TSMC의 설립자)이 왜 하버드 영문학과에서 MIT로 전학을 갔는지,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인텔의 창립자)가 1965년 핸드폰의 출현을 어떻게 미리 예측했는지,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우파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공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어떻게 미국을 흔들었는지, 인텔 CEO 폴 오텔리니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칩 제조 거절을 한 것이 어떻게 반도체 업계의 최악의 실수 중 하나인지를 흥미롭게 엮어낸다. 밀러의 책은 반도체와 얽힌 대학, 기업, 발명, 전쟁, 스파이, 국가의 자존심 등을 꿰뚫어 설명하는 서사적 힘을 가졌다. 

인텔에 제안했다 거절당한 ‘파운드리’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파운드리’ 반도체라는 개념은 모리스 창이 이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인텔에 제안하여 거절당한 사업 모델이다. 인텔의 고든 무어조차도 모리스 창에게 좋은 아이디어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모리스 창은 20년간 TI에서 일하다 대만의 TSMC를 설립하면서 파운드리 반도체를 실현시킨 선구자이자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가 되었다.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는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이다. 이병철은 1982년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를 직접 방문했다. 그는 IBM 컴퓨터 공장 투어 도중 사진 촬영을 허락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기업 비밀이 아니냐고 안내원에게 물었고 안내원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 똑같이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순간 실리콘 밸리의 공장을 한국에 똑같이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이병철에게 일어났다.

대만 TSMC의 설립자 모리스 창(사진 왼쪽)과 한국반도체의 선구자인 이병철 삼성 창업자이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은 엄청난 자본을 요구했기에 만약 실패했을 때 삼성조차 무너질 수 있었다. ‘올인을 하느냐 마느냐.’ 이것은 이병철의 전쟁이었다. 이병철은 몇 달 동안 고민했고 1983년 2월 뜬 눈으로 매우 초조한 밤을 지샌 후 삼성전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반도체를 만들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10개가 있다

1980년대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미국의 반도체 회사들은 앙숙인 일본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삼성을 도왔다. ‘적(일본)의 적(한국)은 나(미국)의 친구다.’ DRAM 가격을 후려쳐서 팔았던(덤핑) 일본보다 삼성이 더 싼 값에 팔 수 있도록 실리콘 밸리는 도왔다. 또한 1986년에 미국은 일본 반도체 업체가 덤핑을 못하게 만드는 협정까지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반도체를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실리콘 밸리는 삼성에게 시장을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이전했다. 마이크론의 창립자 워드 파킨슨은 삼성에게 64K DRAM 기술을 전수했다. 실리콘 밸리의 도움으로 삼성은 향후 DRAM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저자 강연을 하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국이 캘리포니아인가? 어떻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가능한가?’ 아마도 비슷한 질문을 이병철은 받았을 것이다. ‘삼성이 인텔인가? 어떻게 반도체 공장이 한국에서 가능한가?’ 이병철은 실리콘 밸리에 가서 ‘기업의 미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정말 가능한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캘리포니아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바란다. 한국 대학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그 정도 수고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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