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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중심에서 재정을 외치다
대학의 중심에서 재정을 외치다
  • 김규석
  • 승인 2022.12.05 08: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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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규석 고려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필자와 같이 ‘고등교육행정’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아니더라도, ‘대학이 공공재인가, 사유재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나라 교육계, 더 좁게는 고등교육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집단뿐만 아니라, 주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문 후속세대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가 한 번쯤은 성찰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한 답변에 따라서, 사회적 유기체로서의 대학을 바라보는 패러다임과 관련 정책·제도의 큰 물 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학의 재정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분야 지출은 OECD의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제가 회자 되긴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요원한 상황에서 이제는 하나의 따분한 수사로만 남게 되어 버린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널리 퍼진 세계화 담론, 시장 지향적 교육개혁과 이어지는 BK사업 등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몇몇 대학은 국제 무대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표로 드러난 발전상 이면에 대학의 본질적 효용성에 관한 비판적 의견도 드러났다. “비싼 등록금 값은 못하면서 학위 장사로 학생과 학부모의 주머니를 축내는 존재”라는 극단적 평가가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대학에 대한 인식은, 대학의 위기를 다루는 온라인 기사나 유튜브 채널에 따라붙는 “대학이 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나?”, “대학의 절반은 없어져야지!”와 같은 댓글에 고스란히 투영되곤 한다. 학부과정, 대학 교직원으로 일한 기간, 그리고 대학원에서 일과 학업을 겸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등교육의 현장에서 인생 절반을 보낸 필자에게 이는 불편한 진실이다.

‘반값 등록금’이 매우 예민한 정치적 키워드가 되어버린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등록금 현실화를 15년 가까이 통제하면서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정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는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서 국가권력이 대학 권력을 굴복시킨 상황으로 이어졌다. 등록금 현실화를 통해서 재정 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는길은 사실상 막혀 있으며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목매도록 하는 구조가 십 수년간 지속되며 이제는 마치 그것이 원래 표준이었던 것과 같이 고착됐다.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주체성은 각 대학의 이념과 비전에 따라 원칙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국가가 재정지원 사업을 미끼로 대학의 개혁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대학사(大學史)의 큰 흐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등교육의 사회적 수요가 높아져 국가가 이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대학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은 채 사학의 양적 팽창을 방조, 묵인, 허용했던 과거를 드러 내는 「대학과 권력: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김정인, 2018)라는 책이 전하는 통시적 교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이 등록금을 얼마로 책정하는지에 국가가 깊게 관여할 명분은 대학의 존폐를 결정하는 경쟁력 강화의 명분보다 약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고등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며, 당장 눈앞의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고고하게 교육의 공공성과 지불가능성을 외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무책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대학이 얼마의 비용을 청구하는지와 관계없이, 학생과 학부모가 지불한 비용 그 이상의 가치를 그들이 대학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그 대학은 궁극적으로 사회적에서 도태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각 대학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문제이다. 

만약 그러한 책무성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대학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큰 견지에서 사회적으로 더 유익할지 모른다. 시대의 지성인이자 각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고자 하는 큰 뜻을 품고 학업에 임하는 학문후속세대에게, 대학은 학문과 생활의 터전이고, 인생의 목적과 경력의 성공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며, 그들이 학위취득 이후에도 지식생태계에서 살아가며 언젠가는 다시 인연을 맺어야 하는 존재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대학에서 배웠고, 대학에서 삶을 영위하며, 대학을 연구하는 학생으로서 필자는, 대학의 재정을 둘러싼 작금의 교착상태를 구조적으로 해소함으로써 대학이 더 역동적인 사회적 행위 주체로서 진일보하는 계기가 더 늦기 전에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김규석 고려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고려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성균관대 경영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부터 고등교육 국제화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으며, 2017년부터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전략 기획팀장과 입학팀장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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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 2022-12-05 14:30:03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