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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습의 '인문학 위기'와 교수의 침묵
사람 모습의 '인문학 위기'와 교수의 침묵
  • 윤성준
  • 승인 2022.12.13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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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윤성준 동국대 사학과 박사수료
윤성준 동국대 사학과 박사수료

항상 위기라고 했다. 1996년 ‘인문학 제주 선언’을 시작으로 이듬해 ‘IMF 경제 위기’를 거쳐, 2001년, 2006년, 2012년까지 일련의 ‘인문학 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꾸준히 진행되는 인문사회계 학과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구조 조정과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원생·학문후속세대 단절에 대한 우려까지 30여 년간 인문학은 항상 ‘위기’였다고 한다.

이 시기 대부분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보낸 나에게 이러한 담론은 이제 익숙한 호소가 되어 버렸고,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평범한 일상에서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학문 자체가 위기라든지, 학술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닥친 균등한 위기라는 점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에 자리 잡은 정규직 교수보다는 비정규직 교수와 강사, 대학원생이 그리고 수도권보다는 지역 대학의 연구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위기에 대한 목소리와 방안은 어쩌면 위험으로부터 가장 안전하고 먼 곳에 있는 구성원들에게서 주로 발화되거나, 대신 전달됐다.

위기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전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대학의 학술지원제도와 같은 외부 위기 요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꽤 많은 논의 내용이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에 대한 대응과 달리 우리 학문후속세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거의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가 내부와 외부 요인들이 얽힌 복잡한 문제이며, 이것이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문제라는 점에 공감한다면, 내부의 성찰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문사회계 학문후속세대인 연구보조원을 대하는 방식을 올곧이 마주할 때만 가능하다.

가장 먼저 시정돼야 할 사항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학사과정 100만 원, 석사과정 180만 원, 박사과정 250만 원으로 정한 연구보조원 인건비 체계이다. 정확히 이 금액을 기준으로 이공계는 그 “이상”을, 인문사회계는 그 “이하”를 규정하고 있다. 전공에 따른 학문후속세대의 ‘가치’를 인건비로 규정하면서, 인문사회의 상한선은 과학기술의 하한선이 된 현실에서 인문학의 가치나 효용을 호소하는 건 심각한 모순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인건비라는 경제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차원에서도 영향을 준다. 아무래도 불안정하게 연구하는 기간도 길고, 평균 연령이 높은 인문사회계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인문학이나 학문후속세대의 정책과 전망을 논의한다면 그 누구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연구보조원을 대하는 대학은 어떠한가. 대학원생이 줄어듦에 따라 수업을 듣는 재학생 역시 감소해, 수료생이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료생이 소위 프로젝트 연구보조원을 하려면 대학에 학기마다 연구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연구등록금은 보통 대학원 학기 등록금의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다. 한국연구재단이나 연구지원사업 규정 어디에도 수료생이 연구등록금을 내고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연구등록을 한 연구보조원이라고 해도 대학에서 별도의 공간이나 비품을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인문사회계 연구보조원은 실질 인건비가 평균 30만 원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마다 금액의 차이가 있지만) 한 학기 연구등록을 위해 1~2달 이상의 인건비를 고스란히 납부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보조원의 노동과 처우에 침묵하는 다수의 교수들이 학문후속세대를 마주하는 방식이다. 만약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구분에 따라 교수 임금이 상한과 하한으로 나뉜다면 이렇듯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문사회계 교수가 학문후속세대를 대하는 방식이 결국 외면과 침묵이라면,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과 교수의 위기이지 학문이나 학문후속세대의 위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모든 연구보조원의 모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한 주체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점도 충분히 알고 있다. 또 내부적 성찰과 논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학문후속세대를 둘러싼 그 어느 주체도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함께 의사 결정하는 학술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교육부·한국연구재단·대학·교수까지 학문의 위기라고 하면서 극복을 위한 과정에 학문후속세대를 형식적인 조언이나 자문의 역할로만 두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전공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자리 잡아야 하는 당사자들은 학문후속세대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30여 년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윤성준 동국대 사학과 박사수료

동국대 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를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국가와 전쟁, 전쟁과 포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비상대책위원장 및 동국대 분회장, 신진연구자·대학원생 모임인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사무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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