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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한가…가짜 과학이 ‘인종·성별’ 차별
스포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한가…가짜 과학이 ‘인종·성별’ 차별
  • 전준
  • 승인 2022.12.2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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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 ③ 스포츠와 인종·젠더

과학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안목이 필요할까.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소통이 힘들 때도 있다. 이에 화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전준 충남대 교수가 ‘과학의 과학’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과학기술을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성찰하고자 한다. 세 번째는 가장 공평할 것 같은 스포츠가 사실은 인종·성별에서 차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가짜 과학을 이용한 차별이다. 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큰 성공을 노려볼 수 있는 특정 스포츠 분야가 유년기 흑인들의 꿈을 지배한다.”

 

불확실한 과학적 근거로 칭송하고 멸시하는 몸
테스토스테론 지표는 젠더의 다양성 반영 못해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는 우리를 생소한 몸의 세계로 안내한다. 스포츠는 몸의 게임이다. 스포츠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으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신체적 행위를 동원하는 경우 넓은 의미의 스포츠에 해당한다.

스포츠는 그것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이나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인간 문명은 공통된 신체적 한계와 특징을 반영하는 놀이거리들을 발전시켜 왔고, 둥근 공을 발로 차거나 도구를 활용해 타격하는 등의 스포츠들이 널리 전파되어 수행되고 있다. 몸이라는 소재를 통해 스포츠는 인간을 널리 연대시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는 서로 다른 몸을 구별하고, 배제하고, 외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운동선수들의 몸을 보여 그들의 ‘다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 인간의 몸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스포츠는 서로 종종 상충된 입장을 보이며, ‘우리’의 몸에 대한 상식적인 담론들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고한 차별과 편견이 드러나는 장이다. 몸에 대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들은 이러한 차별과 편견의 존재를 직시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흑인은 전체 인구 중 12.5%를 차지하지만, 스포츠 분야에서 비율은 상당히 높다. 사진=픽사베이

다인종 국가인 미국은 특히 인종과 스포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미국의 NBA 농구 리그의 흑인 선수의 비율은 73.2%에 달하며, 여성 농구리그(WNBA)는 74.5%, 풋볼(NFL)은 58%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인구에서 흑인의 비율이 12.5%, 흑인 대학생의 비율이 3%에 못 미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였을 때, 비약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스포츠에 유리한 몸을 타고났는지에 대한 답변은 부정적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선수로 꼽히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4관왕 제시 오웬즈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흑인은 자연적으로 정글에서 삶과 죽음을 두고 달려왔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스포츠에 탁월한 것 뿐이다”라는 비평을 들어야 했다. 

현재 올림픽에서 미국의 흑인 선수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선수들보다 장거리 달리기를 제외한 모든 종목에서 뛰어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의 흑인 선수들의 약 90%는 백인 조상을 보유하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ACE와 ACTN3와 같은 생리조절 물질의 농도를 결정하는 유전적 요인이 인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인종과 스포츠에서의 성취 사이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사회학자들은 흑인 선수에 대한 신화가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라고 본다. 흑인들에게 다양한 사회적 성공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기 힘들고, 따라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큰 성공을 노려볼 수 있는 특정 스포츠 분야가 유년기 흑인들의 꿈을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흑인 선수의 비율은 7.2%에 그쳐, 농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흑인 스포츠선수에 대한 신화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오로지 스포츠로 성공하는 길밖에는 주어지지 않는 상당수의 미국 흑인들의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전체 대학생의 3%박에 되지 않는 흑인 대학생들은 전체 대학생 스포츠 팀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흑인 대학생들이 운동선수가 되는 방식으로 대학의 문턱을 밟고, 부상과 낮은 학업성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남캘리포니아대의 인종평등센터는 흑인 운동선수들을 조명하는 언론사들의 논조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힘이 좋은 흑인선수,” “짐승같이 달려가는 흑인선수”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인종주의적 스포츠 중계를 경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젠더 스펙트럼 다양한데 스포츠는 남녀만 구분

젠더의 문제 또한 최근 들어 국제적인 스포츠의 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2015년, 인도의 육상선수 두티 찬드는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기준으로 여성 육상선수의 출전 자격을 결정하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규정을 스포츠조정법원(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CAS)에 제소했다.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대회 참가 자격 조건으로 두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아직까지도 여자 선수들의 출전 요건으로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의무시하고 있다. 

 

인도의 육상 선수 두티 찬드(사진 가운데)가 육상 릴레이에서 뛰고 있다. 여성 선수들은 신체적으로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도 적법한 여성 선수 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불법적인 약물을 투여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2015년 두티 찬드는 이 문제를 스포츠조정법원에 제소했다. 2019년 두티 찬드는 동성인 여성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위키피디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현재 여성 선수의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5nmol/L(리터당 나노몰)를 초과하면 여성 선수의 참가 자격을 박탈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개인별 편차가 극심하고 연속적인 호르몬 농도를 바탕으로 특정 개인의 출전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는 입장이다. 남성 선수들 또한 개개인별로 테스토스테론 농도 편차가 극심하지만, 남성 선수의 ‘정상 범위’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명시한 규칙은 없다.

여성 선수들은 불법적인 약물을 투여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신체적으로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도 적법한 여성 선수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여전히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부적격의 여성(ineligible female)’을 가려내는 수단이라고 본다. 

둘째,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구분에 명확히 포착되지 않는 다양한 젠더들이 스포츠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일축시킨다. 의학적으로 전 인구의 약 2%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동시에 갖고 태어나는 간성(intersex) 인구로 분류된다. 개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젠더적 다양성이 스펙트럼으로 넓게 정의되는 가운데, 스포츠는 아직까지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을 인위적으로 해내야만 하는 산업적 구조를 갖고 있고, 이를 위해 매우 좁게 선택된 지표가 테스토스테론인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에서 이러한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는, 과학적 증거를 과잉해석하는 것에 가까운 상황이다. 

특히 여성 선수의 ‘남성성’에 대한 이의는 백인 선수들보다는 유색인종 선수들에게 주로 가해진다. 두티의 사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결정권을 보유하고 있는 협회와 과학적 전문가 집단은 북반구의 백인 중심의 국가들에 분포하고 있는데 반해, 두티를 포함한 유색인종 여성 선수들은 훨씬 더 자주 그들이 정당한 여성인지에 대한 사회적 검증에 시달린다. 

 

스포츠, 다양한 몸을 환대·응원하는 축제여야

인종과 젠더와 같은 ‘몸’에 대한 주제가 스포츠와 연결되는 지점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스포츠에 있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 비단 공정성 혹은 정정당당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몸에 자연적 우월성 혹은 열등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복잡한 사회 현상을 과학의 이름을 빌려 간단히 재단하기도 한다. 스포츠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 경구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종종 불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동원하며 환대받고 칭송받는 몸과 멸시받는 몸을 구분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몸의 다름을 근거로 한 차별과 배제야 말로 가장 직관적이고 손 쉬우며, 또한 오래된 종류의 차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대과학은 이러한 차별적 토양 안에서 만들어져 왔으면서도,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성을 계속하고 있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가짜 과학은 ‘상식’의 이름으로 널리 우리 사회에 퍼져있다. 부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가 차별과 구별을 강화하는 가짜 과학의 축제가 아닌, 다양한 몸을 환대하고 응원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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