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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부수다
‘정신의학·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부수다
  • 유무수
  • 승인 2022.12.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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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심혼 탐구자의 길』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 김명권 외 7인 옮김 | 학지사 | 748쪽

뇌는 의식을 매개하지만 의식을 생성하지는 않아
격렬한 감정들은 응축경험 체계로 연결되어 있어

이 책의 저자인 스타니슬라프 그로프는 1931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라하 정신의학연구소에서 LSD와 심현제(心顯劑, psychedelic) 물질의 치료적 잠재력 연구를 시작했으며. 1969년 존스홉킨스 대학교(정신의학과) 조교수가 됐다. 1973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에살렌 연구소의 상주 학자로서 ‘홀로트로픽 숨치료(holotropic breathwork)’를 개발했다. 

 

1956년 프라하 의과대학을 졸업한 저자는 LSD회기에 직접 참여했다. LSD를 섭취한 후 메스꺼움의 느낌을 지나 기하학적 비전의 환상적인 형상들을 보았고, 심미적 환희의 영역을 지나면서 무의식적 심혼(心魂, psyche)과의 만남과 대립이 있었다. 계속된 회기에서 신성한 천둥소리와 함께 의식적인 자아가 꺼내지는 것을 느꼈으며, 프라하의 병원과 지구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렸고, 의식이 팽창하여 우주적 차원에 이르렀으며, ‘나’와 우주 사이의 경계가 없어졌고 무(無)가 됨으로써 모든 것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 후 천문학 문헌에서 접한 빅뱅,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을 통과하는 통로, 초신성 폭발 등은 그때의 경험처럼 보였고, 신비주의 경전의 내용들은 그 경험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정신의학의 전통적 사고와 서양과학의 일원론적 물질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심현제 경험은 프로이트가 말한 ‘꿈’보다 훨씬 강력한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왕도’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다.

저자는 인간의 뇌를 TV에 비유했다. 뇌가 TV의 기계적 구성요소라면 의식은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영상과 음향이다. 의식은 뇌의 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뇌는 의식을 매개하지만 의식을 생성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심혼도 출생 후 전기(傳記)와 프로이트 학파의 개인무의식에 제한되지 않는다. 생물학적 출생의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4개(①분만 전 자궁 내 존재 ②자궁 수축이 주기적으로 태아를 압박 ③산도를 통해 나아감 ④산도에서 방출되고 탯줄이 절단)의 패턴으로 구분할 수 있는 주산기(周産期, perinatal) 단계와 시간·공간·신체감각의 한계를 초월하고 조상전래적·계통발생적·카르마적 기억의 근원인 자아초월적(transpersonal) 단계가 모두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

홀로트로픽 의식 상태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오늘날 정신병으로 진단받고 약물로 억제되는 에피소드가 실제로는 급진적 인격변용과 영적 개안(opening)의 힘든 상태일 수 있다. 이러한 심리영적 위기를 저자는 ‘영적 응급(emergency)’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저자는 개별적인 인간심혼은 다차원적이고 다층적인 시스템이기에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우며 샤먼 입문 위기, 쿤달리니 각성, 절정경험, 전생경험, 근사체험, UFO와의 근접조우 및 외계인 납치 경험, 빙의상태 등을 영적 응급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적응급의 처치에는 주산기 및 자아초월적 차원을 포함하는 심혼의 확장된 모델이 필요하며 적절하게 다뤄지면 놀라운 치유와 통합이 발생할 수 있다.

 

체코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그는 인간의 치유·성장에 대한 정 신 탐구로 기존의 심리학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한다. 사진=위키피디아

저자의 임상경험에 의하면 정서적으로 관련된 기억들이 함께 연결된 형태로 심혼에 저장되어 있었다. 삶의 다른 시기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비슷한 감정이나 신체적인 감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격렬한 감정을 갖고 있는 기억들로 구성된 이 체계를 저자는 ‘응축경험 체계(COEX Systems)’라고 이름 붙였다. 응축경험 체계는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정신신체적인 증상,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 비이성적인 행동들의 이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홀로트로픽 숨치료는 훈련된 촉진자의 감독 하에 그룹 회기로 진행되며 빠른 호흡, 환기적(강한 이미지나 감정을 마음속에 가져다주는) 음악 듣기, 정서적 막힘을 해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디워크, 만다라 그리기, 요가·태극권·기공 같은 운동명상, 경험 내용을 적어보기, 숙련된 촉진자와 토론 등으로 구성된다. 

홀로트로픽 의식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태곳적부터 이어온 인간세계의 전쟁, 유혈사태, 학살의 폭력성은 출생과정의 주산기 매트릭스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완벽함을 향한 욕망은 음식, 섹스, 돈, 명성, 권력, 외모, 지식에 대한 추구와 집착을 지향하지만 이는 결국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하는 대체물일 뿐이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신성하기 때문에 홀로트로픽 의식 상태에서의 신성 경험만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요구를 채워줄 수 있다.

저자는 홀로트로픽 숨치료의 임상 과정에서 기존 주류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부수는 현상들을 관찰했고 기존 패러다임의 급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옌센(Richard Yensen)과 드라이어(Donna Dryer)는 『자아초월 심리학과 정신의학』(학지사)에서 “과학적인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 그로프의 이론을 증명해서 결론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아마도 그로프의 작업이 과학계에서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적 인식론이 요구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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