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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알고 싶어…빠름으로 놓치는 진실
난 네가 알고 싶어…빠름으로 놓치는 진실
  • 장민희
  • 승인 2022.12.22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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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두 번째 주제 MBTI④ MBTI가 담아내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
장민희 한국의학심리연구원 대표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주제 ‘몸’에 이어 두 번째 주제 ‘MBTI’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각을 4회에 걸쳐 싣는다. 장민희 한국의학심리연구원 대표의 네 번째 시선. 

세상에서 가장 궁금하면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사람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진화적으로 매우 유익한 능력이었다. 그 때문인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름에도 불구하고 나와 타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인간은 참으로 많은 도구들을 개발해 왔다. 그것이 과학적인 방법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불과 몇년전까지 혈액형 신드롬이 있었다면, 요즘은 어딜가나 MBTI 성격유형이 화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MBTI로 출연자를 소개하고, 심지어는 기업 채용에서도 MBTI를 물어본다고 한다. 사적인 영역인 소개팅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MBTI에 열광할까? 그 대답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첫 문’의 가치

광활한 세상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때로 큰 불안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처음 우리가 시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제일 먼저 우리는 생각의 범위를 좁히고자 할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인간에게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 예로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유롭게’ 과제를 하라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우리는 한 눈에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아마 MBTI도 이것과 비슷한 욕구일 것이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망망대해 속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을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하지? 하지만 내가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상대방의 과거, 현재, 미래, 장점, 단점, 취미, 현재의 상황과 환경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갈 만큼 인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용한 무속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의 사람이군, 이런 특성을 소유하고 있다니 나와 좀 비슷하네? 정도의 재빠른 센스를 장착하고 싶어한다. 

이럴 때 상대방의 MBTI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을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첫 문을 열어준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닻내림 효과란 일종의 어림짐작이라고는 하는 휴리스틱 정보처리의 한 종류로, 인간의 독특한 인지적 특성을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마치 배가 한 지점에 닻을 내리면 그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무엇을 판단할 때 초기에 접한 정보를 기준 삼아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속도와 정확성의 맞교환

닻내림 휴리스틱의 관점에서 본다면, MBTI는 나와 상대방을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지 일단 기준점을 제시해 준다. 외향인가 내향인가, 직관인가 감각인가, 감정인가 사고인가, 판단인가 인식인가. 그리고 그 유형이 나와 다를 때 ‘아 이러한 이유로 나와 다르구나’라는 것을 명료하게 설명해 준다고 느끼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MBTI는 사람을 아주 빠르게 이해하고 판단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장점 뒤에는 데칼코마니처럼 단점이 공존한다. 빠르게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는 정보처리 방식인 휴리스틱의 단점은 바로 정확성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정관념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빠르게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머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차원으로 사람을 거칠게 스케치하고, 그것과 부합하는 정보를 선택해서 그 사람의 특성을 결론짓고 싶어한다.

MBTI의 네 가지 차원이 이분법적으로 짜장면 아니면 짬뽕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람이 짜장면 같은 사람인지 짬뽕 같은 사람인지를 선택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짜장면이면서 짬뽕일 수 있는 그 미묘한 지대를 망각하곤 한다. 왜냐하면, 미묘함은 곧 불확실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모두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강제 할당하기보다는 하나의 차원 내에서 그 강도로서 인간의 특성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차원들이 여러 가지이며, 그 여러 가지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 이 복잡한 특성들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지를 복합적으로 살펴본다. 

순간에 존재하는 인상을 담기를 원했던 인상주의의 창시자 모네의 그림이다. 인상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교함을 버렸는가. 우리가 MBTI를 통해 이런 디테일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클로드 모네, 「해돋이」, 1840, 캔버스의 유채,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소장.

어렵지만, 편한 길만을 찾을 순 없다

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또 하나는 인간은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 또한 빠르게 답을 내리고 싶어하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답이 변할 수도 있다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물론 큰 틀에서 나라는 존재의 특성이 아주 역동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묵직한 큰 바위 얼굴같은 존재가 아니다(심지어 세월이 가면 바위도 변하지 않는가).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고, 경험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사건들과 희노애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작가와 같은 존재이다.

나와 타인을 고정관념 속에 묶어 두기보다는 내가 걸어온 삶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경험한 것 속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숨죽여서 집중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는 상대방에게도 주의를 기울여보자. 그 사람이 하는 말, 호흡, 눈빛에 좀 더 예민하게 집중해 보길 바란다. 

생을 마감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 장민희, ISTJ로 살다 눈을 감다.” 우리 중 아무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마무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명료하다. 네 가지 알파벳이 담아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의 인생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친밀한 관계를 세우는 진짜 방법일 것이다.

장민희 한국의학심리연구원 대표
중앙대에서 사회 및 문화 심리학을 공부했고, 자기(Self)에 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Self와 Identity의 발달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공부한 주제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 나눌 때 그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믿는 심리학자이다. 대표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7, 공저)이 있고, 삶과 죽음 태도와 성숙한 성격 발달, 사회 문제 등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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