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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품격 있는 정론지로 거듭나겠습니다
[신년사] 품격 있는 정론지로 거듭나겠습니다
  • 이덕환
  • 승인 2023.01.02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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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_ 이덕환 편집인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신문>은 2023년 1월부터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를 새 편집인으로 선임합니다. 이덕환 편집인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2천900여 편의 칼럼·논문을 썼고, 월간 <과학과기술>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교수신문 논설위원을 지냈습니다. 현재 네이버 열린연단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덕환 편집인

격변의 시대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변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냉전 종식으로 등장했던 세계화도 퇴색되고, 이제는 각자도생이 새로운 생존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이 중국과 격하게 부딪치고 있는 것이 그 결과입니다. 기후 위기를 핑계로 유럽연합이 거세게 밀어붙이는 에너지 전환도 힘겹습니다.

국내 사정도 혼란스럽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격하게 충돌하고, 세대·계층·젠더의 갈등도 나날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팬덤 정치와 패거리 문화가 극단적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고령화와 자살률로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대학과 교수 사회도 암울합니다. 폴리페서와 퇴직 관료·법관에게 점령당한 대학은 가장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집단으로 전락했습니다. 대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교권도 땅에 떨어져버렸습니다. 기형적인 ‘통합’ 수능이 만들어낸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공대 기피가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화해·통합·소통을 위한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로남불·후안무치가 판치는 세상에서 염치와 도덕도 실종돼버렸습니다. 지난해에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조차 고치지 못하는 우리의 절망적인 현실을 아프게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고, 대학의 문화가 창달되고, 전문가의 권위가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했듯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학문간의 좋은 이웃을 위한 ‘좋은 담’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절실합니다.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30년 전 ‘한국 지성의 정론지’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교수신문이 품격 있고, 열린 공론의 장을 활짝 열겠습니다.

교수신문이 자유와 이성을 추구하는 교수 사회의 정론지로 거듭나겠습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인 ‘교육’과 ‘학술’을 중심에 놓겠습니다. 교수 사회에 좌표를 제시할 수 있는 필진을 모시겠습니다. 교수 사회의 생각과 변화를 확실하게 찾아내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미래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이나 전통을 핑계로 변화를 거부하는 용렬(庸劣)함은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논쟁적인 교수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논쟁적인 이슈와 아젠다를 적극 발굴하고, 건강하고 건전한 비평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교수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충실하게 반영된 기사를 싣겠습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학생들의 동향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인문정신’과 ‘과학정신’의 균형을 추구하겠습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인문학과 흥미 위주의 과학기술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견고한 이분법적 구획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소통을 강화하겠습니다. 단편적인 연구 성과나 기술 개발의 홍보는 지양하겠습니다.

교수신문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소박한 노력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간곡하게 당부 드립니다. 따뜻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계묘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덕환 편집인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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