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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신 느끼기…오직 선한 행동만으로 가능
숭고한 신 느끼기…오직 선한 행동만으로 가능
  • 임우영
  • 승인 2023.01.0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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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괴테 시선』(전 8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임우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88~948쪽

그리스·로마·페르시아·인도·중국 문학 등 공부
고백록이자 일기로 자신의 문학에 시로 녹여

『괴테 시선』은 총 8권으로 이뤄져 있다. 괴테의 여든셋의 삶을 따라가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이 폭발했던 ‘질풍노도 시대’의 시들(1권), 바이마르로 가서 슈타인 부인과 교류하면서 한층 성숙해진 시인의 모습(2권),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감격과 도취를 에로틱하게 그려 낸 「로마 비가」와 베네치아에서 느낀 감정을 고대의 에피그람 형식으로 쓴 「베네치아 에피그람」(3권), 괴테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러와 함께 퍼붓는 가시 돋친 풍자시 모음집 「크세니엔」(4권)이다.

 

 

 

 

또한 시인으로서 완숙기에 접어들어 독일 고전주의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시들(5권), 나폴레옹 전쟁 시기라는 고난의 시대에 정신적으로 멀리 14세기의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가 살던 페르시아로 달아나 서방의 시인이 쓰는 동방의 시들인 「서동시집」(6권), 마지막 순간까지 후세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던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은 시들(7권), 마지막으로 괴테가 죽은 후에야 정리되었던 격언시 모음집인 「온순한 크세니엔」(8권)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삶과 사상이 담겨 있는 시들을 거의 모두 소개하고 있다.

괴테의 시는 시인 자신이 체험한 현실과 생각을 가슴속 깊이 녹여서 일기나 자서전을 쓰듯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괴테의 시를 읽으면 이것이 시인지, 아니면 운문으로 쓴 고백록이나 일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런 현상은 괴테가 인간과 자연, 신과 세계, 예술과 자연을 소재로 하여 자신이 그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시의 운율로 녹여냈기 때문에 나타난다. 괴테는 자신의 시에 비유와 은유 및 상징을 구사하는데, 괴테가 그 시를 쓰던 시대적 배경이나 당시 상황과 심정 및 생각에 대해 모르면 그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괴테 시선』에서는 각 시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많이 제공해서 독자들이 괴테의 시를 읽은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 괴테의 시는 한 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때 해설을 읽어 보고 다시 그 시를 읽으면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괴테도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한 번만 읽고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괴테 시선』에서는 각각의 시기마다 괴테의 삶과 문학적 특징을 미리 소개했고, 필요한 경우 각 시에 간단한 주석과 해설을 달아두었으며, 마지막에는 그 책에 수록된 시들 전체에 대한 해설도 덧붙였다. 

『괴테 시선』에는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괴테가 쓴 모든 시는 아니다. 그래도 『괴테 시선』에서는 『괴테 시선』과 에피그람 유고들 및 기타 에피그람, 풍자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이나 격언시 모음집인 「온순한 크세니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소개되었다. 『괴테 시선』은 괴테가 쓴 모든 시를 담은 ‘괴테 시 전집’은 아니지만, 괴테가 쓴 시의 70∽80퍼센트는 수록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828년 괴테의 모습이다. 이미지=위키백과

『괴테 시선』을 작업하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시들도 많았다. 그래도 괴테의 시들을 번역하면서 가장 여운이 남았던 시가 『괴테 시선 2』에 들어 있는 「신적인 것(das Göttliche)」이라는 시다. 괴테가 34살 때인 1783년에 쓴 시인데, “고귀해져라 인간이여,/ 도움 많이 베풀고 선하게 살아라!/ 그것만이/ 인간을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과/ 구분해주기 때문에”라는 말로 시작해서 “고귀한 인간이여/ 도움 많이 베풀고 선하게 살아라!/ 지지치 않고 수행해라/ 유용한 일, 옳은 일을,/ 그래서 예감했던 저 존재들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어라!”하며 끝난다. 

괴테가 말하는 “신적인 것”이란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간의 인식력으로는 완전히 파악해 낼 수는 없지만, 오로지 선한 행동을 통해서 보다 숭고한 존재인 ‘신’을 “예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이런 생각은 괴테 만년의 작품이나 사상에까지 이어져, 그 엄청나고 거대한 괴테 문학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괴테의 시는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겨봐야 독자 스스로 그 시의 의미를 도출해내게 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도 한 번쯤 자신의 삶을 괴테의 이런 시구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괴테의 시는 끊임없이 우리의 시야를 열라고 요구한다. 괴테 자신도 외국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괴테는 “세계 시민” 의식, “세계 문학”에 대한 이해, 이를 위한 “교양”을 강조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뿐만 아니라, 페르시아나 인도 및 중국의 문학까지도 공부해서 자신의 문학에 녹여 시를 썼다. 이런 요구는 모두 미래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래 세대는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로 교류하고 이해함으로써 형제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괴테는 「온순한 크세니엔」(『괴테 시선 8』)에서 미래 세대에 대해 많이 말한다. 즉, 과거(“어제”)와 현재(“오늘”) 그리고 미래(“내일”)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역사는 과거에 한 번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똑같은 일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말한다. 

노년의 괴테가 특히 시에서 후세에 남기려는 메시지는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지고, 과거의 일을 거울삼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라’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대에게 어제가 분명하고 또 열려 있다면/ 그대는 오늘도 힘차고 자유롭게 활동하리라./ 그래서 내일을 기대할 수도 있으리라./ 똑같이 행복한 내일이 될 것이라고”(「온순한 크세니엔」 1179∼1182행).

『괴테 시선』을 번역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원문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역보다는 차라리 직역에 가깝게 번역했다. 그래야 괴테가 하고자 하는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졸역 『괴테 시선 1∼8』이 우리나라에서 괴테와 괴테 문학을 이해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임우영
한국외대 독일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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