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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정책의 원조, 이춘화 장군
‘초격차‘ 정책의 원조, 이춘화 장군
  • 조언정
  • 승인 2023.01.0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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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조언정 한국공학대 교수

(※ 이춘화 장군이 한국정밀기기센터(FIC) 이사장과 KIMM/FIC 초대 통합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외국기관과 체결한 업무협약서에 General Chun Hwa Lee라는 직함을 사용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직함 중에서 장군을 선호했다.  그래서 이춘화 장군으로 호칭한다.)

윤석열 정부의 24번 국정과제에 있는 미래전략산업 초격차 확보(산업부)에서 등장한 초격차가 연일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 관련 행사에서는 초격차 기술로 산업 대전환, 디지털 초격차, K-콘텐츠 초격차 등 다양한 구호를 쏟아내며 전방위적으로 초격차를 독려하고 있다.

 

1975년, 제6회 한국전자전람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정밀도 경진대회 입상작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언정

초격차는 무엇인가? 포털사이트 한영번역기에서는 초격차를 super-difference, super gap으로 번역한다. 일론 머스크가 공동 설립한 OpenAI 회사의 ChatGPT에게 물어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기능이 간단한 자동차 또는 마시는 차 등으로 매번 답변을 달리하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AI가 답변하기 어려운 생소한 용어이다.

모 대기업 CEO는 “초격차란 다른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술은 물론 조직, 시스템, 공정, 인재 배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level)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이 혁신적인 시스템 설계를 통해 아웃풋을 초격차로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한다.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전자산업에서 크게 성공한 모 대기업의 초격차를 위한 혁신은 이건희 회장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에서 회장이 초밥 한 점에 밥알이 320개라면서 밥알 수를 잘 조절하라고 지시하는데 이는 이병철 회장의 실제 일화이다.  일본 최고의 요리사들이 생선 무게 15g, 밥 무게 15g으로 초밥을 관리할 때 이병철 회장이 밥알 수까지 꼼꼼하게 따졌으니 일본을 제치기 위한 레트로 초격차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모 반도체회사의 초격차는 이춘화 장군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이 한국전자통신 주식회사를 인수하고 이춘화 장군을 사장으로 영입한 뒤 적자였던 회사가 흑자 기반을 확실히 했다.  나중에 삼성반도체통신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고 삼성전자와 합병된다.

 

한국전자통신 주식회사 사장 취임 후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1981). 사진=조언정

 

이병철 회장이 영입한 레트로 초격차의 선봉 이춘화 장군 (1927~2021)

한국최초의 공업단지는 1966년에 완공된 구로공업단지이고 초기에 28개 기업과 UNESCO와 상공부가 설립한 한국정밀기기센터(FIC)가 있었다. 이춘화 장군(육사7기)은 미국 육군통신학교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통신전문가였는데 육군정보통신학교장, 육군 통신감, 합참 초대 통신전자국장까지 하고서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고, 1971년 한국정밀기기센터(FIC) 이사장에 취임했다.

1971~1979년 정밀기기공업과 전자공업 발전을 위해서 큰 기여를 했고, 1979년에 한국정밀기기센터(FIC)와 기계금속시험연구소를 통합시키면서 1980년까지 초대 통합소장이었다. 공직에서 퇴임 후에 이병철 회장이 직접 영입해서 1981년부터 한국전자통신주식회사(삼성반도체통신) 사장으로 시작하여 10년 동안 삼성그룹 5개사 대표를 했다.

육군 통신감이 되기 전에 체신부에 파견되어 전무국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동전화 교환기 국산화를 주도했고, 70년대에 10년 동안 대표적인 공공연구기관인 한국정밀기기센터(FIC) 이사장 및 KIMM/FIC 초대 통합소장, 80년대에 10년 동안 삼성그룹 5개사 대표를 했으니 현대사에서 산업·경제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엔지니어클럽이 고도성장기 각 산업기술 분야의 선두에서 이를 지휘하고 이끈 17명의 근대화 주역으로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최형섭과 함께 이춘화를 선정한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박정희의 테크노크라트, 싱크탱크, 기업인으로 대한민국의 약진을 위해 열정을 바쳤으며 이러한 헌신과 노력을 토대로 지금의 초격차 경쟁력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역대 사장들이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춘화 장군이다. 삼성전자와 통합된 한국전자통신 역대 사장으로 참석했다. 사진=조언정

지금 한창 인기있는 드라마에서 “아직은 국산이 일제한테 안 된다”. “그래도 국내 1위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자식에게 창업주 회장이 “전국체전 나가냐”고 호되게 꾸짖는다.  이를 보면서 Heros of Quantum Jump라고 불리는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이 온갖 험난한 악조건을 뚫고 이룩해낸 레트로 초격차가 유독 생각난다.

당시 한국정밀기기센터(FIC)는 한국정밀기기센터육성법에 의해서 기술훈련, 표준교정, 시험검사 및 기술개발이라는 주요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와 동시에 정부로부터 전자공업진흥기관으로 지정되어서 국립공업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전자공업진흥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 중에서 기술훈련 및 기술개발 부문은 학교법인 한국산업기술대학, 시험검사 부문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 각각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오늘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수출의 여인상(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근로여인상)이 우뚝 서 있다. 여인상의 청동판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져 있다. 수많은 공업단지 근로자의 열정과 헌신으로 우리 산업이 초격차를 달성해 왔다. 공단 근로자는 국가산업단지 영광의 역사와 산업화의 주인공이다.  한국엔지니어클럽이 조국 근대화 주역으로 공단 근로자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조언정
한국공학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기술경영을 가르치면서 기술경영의 뿌리를 Apollo Project(1961~1972)와 NASA deputy administrator George M. Low에게서 찾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사 인지컨트롤스(주) 사외이사 (20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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