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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불씨, 장조림
연구의 불씨, 장조림
  • 김서연
  • 승인 2023.01.09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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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서연 이화여자대 사학과 박사수료

2014년 10월, “뭐라도 반드시 찾아와서 석사논문을 쓰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하와이로 2주간 해외연수를 떠났다. 해외사료연수가 늘 그렇듯 시간은 없고 찍어야 할 자료는 많았다. 민박집 친구들과 야자수가 만개한 와이키키의 식당에 앉아서도 나는 그 다음날 정리해야 할 자료 목록을 봤다. 자료에 대한 열정과는 별개로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여기에 나를 있게 하려고 발 벗고 도와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연구소에서 자료를 찍는 8시간 내내 내 머리를 지배한 생각은 ‘다 못 찍으면 어떡하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 찍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았지만, 해외연수가 처음이었던 23살의 초보 석사생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내 팔이 카메라라고 생각하고 기계처럼 자료를 촬영하니 마음이 지쳐 딱딱하게 굳었다. 연구 대상이었던 조지 M. 맥큔이라는 인물과 그의 인생이 생동감을 잃고 어떤 거대한 산이나 바위가 된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인물 연구인데 자료만 보다가 마음이 식게 생겼다고 생각할 즈음, 편지 한 통이 나왔다. 당시 미국에 거주 중이던 맥큔이 1928년 평양에 있는 친지에게 신년 안부를 묻는 짧은 서한이었는데, 그는 한글로 ‘장조림’이 먹고 싶다고 쓰고 옆에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장조림 그릇으로 추정되는 사발을 그려 놓았다. 그 때 느낀 감정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맥큔이 더 이상 바위가 아니라 장조림 맛을 아는 실존했던 사람이라는 게 갑자기 실감나게 다가왔다고 하면 조금이나마 설명이 되려나. 아무튼 내가 석사논문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장조림, 아니 80년도 더 전에 장조림이 맛있다고 쓴 미국인의 편지였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연구 범주를 확장해가는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자아비판의 연속이었다. 수료 후에 미국으로 이주하며 자책의 빈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능력에 비해 너무 과분한 것을 공부하고 있지 않은지. 내 부족한 글솜씨가 이 재미있는 주제와 인물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왜 나의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 것 같은지. 사실 박사과정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겠지만, 이런 생각에 몰두하게 되면 이따금 마음이 가문 논처럼 쩍쩍 말라 갈라지는 때가 온다. 나의 경우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손이 닿을 거리에 ‘포기’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미국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한국학자에 대한 수요는 그리 높지 못하다. 한국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럼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고 나니, 문득 “내가 한국과 미국 그 어느 곳에서도 수요가 없는 연구 주제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잘못 왔나?”라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당장은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생각이 미치기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우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전투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지만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자료를 보고 글을 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자료를 볼 때 ‘장조림’을 볼 때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다 보면 그런 희열들이 또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으로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앞으로 내가 본 사료보다 볼 사료들이 훨씬 많으니 사료와 교감하는 희열이 찾아올 기회 또한 아주 많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선배들이 모든 연구자들은 언제고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아, 공부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뿌듯한 순간이 온다고 했는데, 순수한 학문적 열정으로 연구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하는 작지만 소중한 ‘장조림’들이 쌓이는 찰나가 나에게는 바로 그 순간들이다. 아주 드물게 경험하지만 연구의 불씨를 유지해주는 동력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넓게 보면 인생도 그렇겠지만, 특히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연구자들에게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와의 크고 작은 투쟁들의 기록이다. 소위 말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드나드는 것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이 끝난다고 해서 연구 일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연구자로서의 삶은 길다. 부딪히고 깎여나가는 길고 지난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려면, 여정이 끝나도 작동 가능한 자신만의 동력을 구축해야 한다. 

 김서연씨는 미국 한국학의 초창기 멤버인 맥큔(George M. McCune, 1908~1948)의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맥큔은 북장로교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조선의 외교 관계를 연구하여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옥시덴탈대학교를 거쳐 UC 버클리 사학과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한국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서연 이화여자대 사학과 박사수료
이화여자대 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거주 중이며, 태평양전쟁 전후 미국 제도권 학계에서 한국학이 시작된 과정과 그 길을 내는 데 일조한 인물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좋은 연구와 좋은 연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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