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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사회과학을 역사학적으로 다룬다는 것
1960년대 사회과학을 역사학적으로 다룬다는 것
  • 이봉규
  • 승인 2023.01.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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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봉규 연세대 미래캠퍼스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21세기 초 대학생이 된 나는 예전에 비해 수그러든 학생운동 열기에서도 여전히 운동하는 이들을 흠모했지만, 시일이 지나며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운동은 늘 현실의 무언가에 탁월하게 투쟁했지만, 그 너머와 전후를 음미하는 데에 취약하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봐서는 실로 착각이었지만 그때는 깊고 두루 안다면 답을 깨치리라 여겼고, 공부를 더한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곡절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였지만 이후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었다. 노무현정권 때에도 더러 ‘민주화운동세력이 왜 이럴까?’ 싶기도 했지만, 촛불정국 이후 정권은 초기의 기대에 거의 부응하지 못하였다. 군사독재의 유산을 끌어안은 이들에게 시선을 줄 리야 만무했지만 세월호 진상규명도 차별금지법 제정도 주저하는 저들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자녀교육 문제를 비롯해 성폭력에 무감하고 부와 권력을 확장해가는 면면을 마주하면서, 저들은 적대하면서도 공모하는 ‘대한민국 헤게모니’의 한 축이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독재와 저항의 구도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졌던 역사적 의의야 자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늘날의 한국과 그 연원을 잘 헤아릴 수 없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부터였다.

박사학위논문에서 나는 1960년대 한국 사회과학계 중에서도 행정학, 경영학, 교육학의 전개과정과 변화를 살펴보았다. 특히 인간의 관리 개발 담론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축되었는지 주목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응용과학에 관한 학술적 관심을 제도화하기 시작한 사회과학계는 1960년대 후진성 극복과 근대화의 핵심으로 인간, 사회의 관리 개발 문제를 제기하였다. 

행정학을 체계화하기 위한 시도 속에 마련된 발전행정론, 능동적이고 개척적인 인간 만들기에 초점을 둔 발전교육론은 그때까지의 사적, 공적 인간관계나 생활양식을 극복해야 할 전통이자 후진성의 요소로 규정하고 관리·개발 지향의 ‘국민’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전통’적인 연대 대신 ‘국민’으로서 연대를 강조하는, 연대의 재구성은 ‘조국근대화’의 방법이었다. 경영학은 현대 자본주의로의 질적 전환을 위해 자본의 시선에 정향된 경영담론과 노사협조론을 마련해 나갔다. 1960년대 사회과학자들은 노동자와 학생 나아가 국민 스스로가 스스로를 관리하고 개발하도록 품성의 ‘근대화’를 촉구하였다. ‘잘 살아보세’의 물질적 지향과 욕망 자극에 이들도 함께 하였다.

특히 주목하였던 점은 박정희 정권의 개발 드라이브에 비판적이었거나 저항하였던 이들도 인간에 대한 관리·개발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관리·개발지향적 지식과 태도는 군사독재를 용인하거나 저항한 이들을 넘나들면서 터전을 마련하였다. 87년 민주화 이후 세칭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주고받으면서도 자기계발담론이 더욱 인기를 차지하고 어디 한 군데 관리하고 경영하지 않는 데가 없는 요즘을 보자면, 관리개발 서사야말로 한국사회와 그 성원들의 지적, 도덕적 동의를 두루 획득한 것이라 할만하다.

이처럼 연구대상으로 1960년대 사회과학계의 움직임과 논의를 살펴보았지만 오늘날의 사회과학을 직접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해 학위논문을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여느 역사학 연구가 그러하듯이 연구대상을 보다 역사적인 시선과 긴 호흡 속에서 펼쳐 보인다면, 오늘날 사회과학계 현실을 고민해 보는 데에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사회과학자들은 한국적 사회과학을 촉구하는 동시에 미국 사회과학의 문제의식과 방법을 ‘선진’이자 ‘과학’이란 이름하에 수용하는 이중적, 종속적 태도도 나타내었다. 노동현실 개선을 주장하면서도 전태일의 분신 이전까지 미조직노동자들의 처지를 노사관계론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도 얼마간 그 때문이었다. 오늘날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러한 양상의 역사성을 내어 보이는 것까지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과학이 위기라 여겨진다면 그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인문학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국외 사회과학의 최신 경향에 지나치게 기대거나, 귀국한 해외 연구자들에 비해 국내 연구자들을 홀대한 학술공동체의 관행을 문제시한 지도 제법 되었다. 이에 비하자면, 사회과학 연구가 한국근현대사의 긴 추세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영역을 확대하였는지, 사회과학자가 당대 지배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여느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유방식과 상식을 제공해나갔는지 역사적,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사유하려는 노력이 더욱 적극적이었어야 했다. 나의 학위논문이 선학들의 노력을 계승하는 것이면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대화를 두텁게 하는 데에 미력하나마 도움되었으면 한다.

이봉규 연세대 미래캠퍼스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2022년 8월에 연세대에서 「1960년대 한국 사회과학계의 인간 관리·개발 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주제는 현대 한국의 지배 담론, 인간에 대한 관리·개발 논의 등이다. 최근에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행정학 연구와 관리(management)론」(<역사비평> 141, 2022 겨울)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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