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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연구실에 불을 밝히는 이유
은퇴 후에도 연구실에 불을 밝히는 이유
  • 정용승
  • 승인 2023.01.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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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용승 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 

우리 주위의 자연과 환경은 공기·물·토양과 생태로 구분할 수있다. 공기는 기업이나 상업성과 관련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좋은 공기와 나쁜 공기를 따지고, 온난화와 세계적인 기후변화, 이변적인 재해발생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공기에 대한 연구는 국가적으로 수행해야 할 봉사 업무에 속한다.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직장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8·15광복 이후 초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대기환경에 입문한 제1세대이다. 2004년에 대학에서 정년 퇴직 후, 지금까지 19년째 작은 비영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보수도 없이 헌신 봉사하는 직원과 함께 공기관과 작은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흔히 나이가 55~60세가 되면, 공부와 연구를 등한시하게 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연구사업의 평가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60대 후에도 주말은 물론 저녁마다 연구실에서 불을 밝히며 쉬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결국 학문의 정상에 오르고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이들 중에는 60~70대가 많고, 천재적인 학자보다는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준재가 더 많다고 한다.

50여년 매일 아침·저녁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해서 대기의 상태와 날씨 현황을 파악한다. 거의 매일 국·내외에서 이변적인 대기환경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현황을 파악해야 마음이 놓인다. 공기의 화학적·물리적 성분과 요소를 실시간으로 1년 365일 관측하고 서해로 이동하는 중국의 오염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이 글을 쓰는 날에도 연구소 밖의 먼지 농도는 125~211μg/m3이다.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약한 황사가 날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꾸준하게 일을 하고, 삶의 보람을 추구한다. 2~3일의 휴가를 즐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지난 2005년에는 세계 최대의 출판사인 스프링거(Springer)에 국제학술지 창간을 제안했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제출판사인 스프링거는 네이처 등 수천가지의 학술지를 출판한다. 

며칠을 고민한 스프링거가 필자를 편집인으로 위촉했다. 내가 세계적으로 정평있는 『Atmospheric Environment』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10여년 동안 활동했고, 초빙 편집인으로 4권의 특집호를 발간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2개의 국제학술회의를 창립해서 각각 7년과 22년 동안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개최했던 업적도 인정해주었다. 2년 이상의 시장조사를 거친 스프링거는 드디어 2008년부터 『대기환경과 건강』(Air Quality, Atmosphere & Health, AQAH)을 계간(연 4호)으로 6년간 발간했다.  

그 다음 해부터 3년은 격월간(연 6호)으로 발간했고, 2018년에 10호를 발간한 후, 창간 12주년인 2019년부터 월간(연 12호)으로 발행되는 행운을 얻게 됐다.

필자는 편집인으로서 존스홉킨스대학의 존 사멧(Jon Samet) 교수를 건강분야의 공동편집인으로 초대했고, 효과적인 편집기획을 통해 의학 관련 대기오염 분야의 좋은 논문을 싣는 우수한 학술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학술지의 지명도 평가는 논문의 인용지수 임팩트 팩터(IF)로 평가된다. AQAH의 IF평가는 창간 5년 후인 2012년 1.455였지만, 2021년에 5.804가 됐다. 관련 분야의 제1급 저명학술지인 『Atmospheric Environment』의 IF가 5.755이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창간 14년 만에 60~100년 된 미국, 일본, 캐나다의 관련 학술지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제1급 국제학술지로 발전해서 많은 축하를 받고 있다. 

국제과학학술지는 주로 영어권에서 출간된다. 동양인이 창간하는 사례는 극히 적고, 성공율도 낮다. 특히, 비영어권의 한국인이 창간해 편집인으로 10여년 동안 활동하는 경우는 찾아보기어렵다. 심사하고 편집하는 일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희생해야만 한다.

영어가 느리고 어려운 필자의 경우에는 영미의 편집인들보다 2~3배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과학자에게 단점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사실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단 한 번 읽어도 될 것을 2~3번 읽어야 되고, 종국에는 질적으로 더 우수한 논문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2개의 국제학술회의를 성공적으로 계속 개최하고, AQAH를 창간해서 14년만에 본 궤도에 올려놓은 것을 국제 과학사회에 대한 가장 보람된 봉사로 여기고 있다. 

정용승 (재)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와 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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