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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의 교육을 망친다
가성비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의 교육을 망친다
  • 김여람
  • 승인 2023.01.1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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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세 번째 주제 ‘학교정글’②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까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에 이어 세 번째 주제로 ‘학교정글’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각을 4회에 걸쳐 싣는다.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의 두 번째 글이다. 

유치원의 아웃풋과 가성비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의 유치원을 두고 나는 대학입학 원서를 낼 때보다 더 치열한 고민을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가능하면 영어유치원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준비 없이 해외로 이주한 탓에 오랜 기간 고생했던 경험 탓이다. 실제로 언어 습득에는 어린 시절에 해당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도 있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은 내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곳은 아이들이 영어로 즐겁게 놀면서 연령에 맞는 교육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를 조기에 학습하기 위한 영어학원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동네에서 최대한 ‘놀이식’을 표방하는 영어유치원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요즘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놀이식 영어유치원은 학부모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졸업하하고도 영어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면 굳이 비싼 비용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면 영어로 듣고 말하고,  책을 읽고, 혼자 일기를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아웃풋’이라 한다. 비용이 적으면서 아웃풋이 많을수록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이웃풋이 떨어지는 놀이식은 이 ‘가성비’가 떨어지는 탓에 인기가 없다. 실제로 내가 아이를 보내고자 했던 놀이식 영어유치원은 학생이 없어서 지난 여름 문을 닫았다고 한다. 

놀이식의 반대편에는 ‘학습식’ 영어유치원이 있다. 학습식에서는 아이들을 대놓고 공부시킨다. 숙제도 많고 테스트도 있다. ‘레테’라는 레벨테스트도 흔하다. 레테를 통과하지 못하면 입학을 할 수가 없다. 5세에 처음 입학하려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네에서 유명한 학습식 영어유치원의 입학설명회에서 원장은 아이들이 집에 가면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 정도는 무조건 놀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관련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가성비, 레테, 아웃풋과 같은 단어들이 무한 입시경쟁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이집을 고민하던 아기 엄마에서 정글과 같은 입시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예비수험생의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홍도의 「서당」.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가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안쓰스러운 표정의 훈장 선생님 때문일까?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까? 

양육의 궁극적 목표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아이를 양육할 때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가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에 더해 자신은 “아이가 마음이 편한 사람으로 크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예전에 재직했던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학교는 학습적인 면에서 상위 1%에 해당되는 아이들이 오는 학교였다. 국가의 리더를 키운다는 설립이념을 강조하는 그곳에서 내가 1학년 아이들에게 많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자기 쓰레기는 자신이 치우자는 것이었다. 각 선생님에게 교실이 배정되어 아이들이 수업에 따라 움직이며 들락날락 하는 일이 잦은 탓이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변을 정돈하는 일에 익숙해진 고학년과 달리 1학년 학생들의 경우에는 수업이 끝나고 간 자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의 리더를 키우는 학교에서조차 자기의 쓰레기는 스스로 치우자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해야 하다니. 아무리 1학년이라고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아니지 않은가.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상담실에서 아이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남긴 쓰레기를 치우고 가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약과였다. 아이 성적에 대한 기대나 진로에 대한 강요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강한 부모의 심한 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반대로 내 자식만 좋으면 혹은 내 자식의 성적만 좋으면 됐다는 부모도 종종 있었다. 친구를 괴롭히거나 갈등을 빚어도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별 게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고, 아이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부모도 있었다.

막상 정글에서 살았던 모글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학교는 정글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부모가 정글을 만든다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까?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부모들이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귀감이 되어 주신 멋진 부모도 만났다. 그러나 모든 부모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학교를 정글 같은 곳으로 만드는 갈등 뒤에는 예외 없이 아이들의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비인간적인 수준의 기대나 압박, 그리고 도를 넘어서는 과잉보호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해 나갈 때 결국 서로를 뜯고 뜯기게 만든다.

세계적인 언어-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 『빈 서판(blank Slate)』에서 “부모의 양육을 통해서 아이들을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타고난 자질이 있으며, 부모보다는 또래집단의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년기 시절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절대적이라는 점에 대해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다. 발달심리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의 저자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 또한 부모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드는 힘도 쥐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부모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입시와 직업적 성공과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일류대학을 나와 잘 먹고 잘사는 어른’으로 키워 내기 위해 몰두하는 동안 아이들은 상처받고, 또 받은 상처의 화살을 주변으로 돌리면서 자신이 정글로 만들어버린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건강함이라는 사실을 (나부터) 잊지 말아야 한다.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지난 4년 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했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의 수업을 진행했으며 진학상담부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저서로는 『민사고 행복 수업』(2019),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심리학 교과서』(2020) 등이 있다.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한 후 같은 대학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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