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9:20 (토)
‘마그레브’ 전문가가 되고 싶다
‘마그레브’ 전문가가 되고 싶다
  • 박장근
  • 승인 2023.01.30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박장근 모로코 UM6P 대학 아프리카경영대학원 DBA과정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존경하던 인물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반 총장 덕분에 학생들 중에는 장래 희망으로 외교관이 되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나 또한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기아에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을 진학할 즈음, 아프리카에는 프랑스어를 쓰는 국가가 많다고 들었고, 아프리카에서 일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의 나는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아프리카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아프리카 국가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였다. 두 번의 라마단을 지나고 나니, 알제리에 관해 이야기할 만한 추억이 조금씩 쌓이게 되었다. 알제리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나는 아프리카 지역 관련 석사급 연구원으로 채용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알제리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부는 아프리카에서 살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한두 번은 신이 나서 알제리 이야기를 열심히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딘가 질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제리는 분명 아프리카였지만,  아프리카가  어떠냐는 질문의 ‘아프리카’는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적으로 아프리카와 관련된 질문에는 대개 기대하고 있는 대답이 정해져 있었고 그러한 인식은 아프리카 대륙이 처한 현실과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프리카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성격의 것들이었다. 애초에 알제리에 살았던 것만으로 아프리카를 이야기한다는 게 여간 마음이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쯤 되니 우리가 쉽게 지칭하는 아프리카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50개 이상의 국가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대륙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는 러시아의 두 배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중국, 인도를 넣고도 남을 정도의 면적이다. 다른 모든 대륙이 그렇듯이 아프리카 대륙의 각 지역은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대신 아시아를 대입하면 이해가 쉽다. 예컨대, 일본에 살면서 일본에 관해 공부했다고 해도 한국을 잘 알 수 없을 뿐더러, 일본의 특성을 가지고 동남아시아 국가의 특성을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다. 분명 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정서는 있지만, 지역별로 각각 다르고 설령 같은 지역에 있다고 해도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라고 다르지 않다. 같은 아프리카 국가라고 해도 모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정학적 위치, 인종, 언어, 문화, 환경 모두 상이하다. 어쩌면 우리는 아프리카 특정 국가, 특정 지역의 특성을 마치 아프리카 대륙 전체인 것 처럼 이해하지 않았을까.

흔히 아프리카 지역은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구분을 짓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북아프리카를 아프리카 지역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북아프리카  지역은  중동과  합쳐서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지역으로 묶이게 된다. 하지만,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에서도 서쪽에 있는 소위 마그레브 지역은 동쪽의 이집트와도 언어, 역사, 문화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뿐더러, 심지어 중동과는 마치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단순히 아프리카라는 표현은 아프리카를 하나의 국가처럼 보는 말이니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아프리카를 이야기할 때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몇 개의 큰 덩어리로 분류하는 노력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바라보아야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이 조금씩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프리카 전문가가 아니라, 북아프리카 전문가, 더 나아가 마그레브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언젠가 마그레브라는 표현이 서유럽, 동유럽을 이야기하듯 일상에서 사용되길 기대해 본다.

 

박장근 모로코 UM6P 대학 아프리카경영대학원 DBA과정 
한국외대 프랑스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알제리에서 삼성물산의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알제리』를 썼다. 현재는 모로코 모하메드 6세 폴리테크닉 대학 아프리카경영대학원 DBA 과정에 있다.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