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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결핍의 시대로 기억될 것인가
공감 결핍의 시대로 기억될 것인가
  • 신희선
  • 승인 2023.01.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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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한때 격리되었던 장애인들을 이제 쇼핑몰, 극장,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은 추상적이고, 최악의 경우는 아예 보이지 않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언젠가 나는 장애 운동가들이 워싱턴 D.C.의 러시아워에 휠체어를 탄 채 교차로를 막고 시위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장애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어렵고, 보도의 대부분이 너무 울퉁불퉁하고, 공공장소와 그 밖의 지역 곳곳에 턱이 많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다며 항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고, 그들의 운동은 사회적 평등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와 서울시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보면서, 제러미 리프킨이 『공감의 시대』에서 언급한 미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떠올렸다. 리프킨은 “공감은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자신의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적지 않은 서울시민들이 장애인 시위 때문에 출퇴근이 지체되어 불편을 겪는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자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의 정치가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폭력에 취약한 장애인, 노동자, 여성들이 사회적 혐오에 노출되고 있는데, 이들의 권리와 민생 복지는 축소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업무는 상대적으로 주변화되거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치적위주의 사업에만 돈을 쓴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시장 공관을 새로 마련하는 데는 엄청난 예산을 쓰면서도 시민들의 동네 사랑방인 ‘작은 도서관’ 지원은 중단해버렸다. 모든 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공권력의 중요한 임무라는 엄중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인다. 

“관심 가져봐야 달라질 것도 없다. 정치에 관심 끊은 지 오래다.” 양극단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유튜버 세력들의 정치 과잉의 태도에 신물이 나서, 차라리 정치를 외면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면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문제에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화의 소재로 정치는 종교만큼이나 금기시 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인만의 일이 아니다. 시끄럽고 불편한 사안일수록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로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 발언하고, 때로는 행동해야 한다. 리프킨은 “어떻게 하면 ‘가진 자’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갖지 못한 자’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해 함께 안락의 문지방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은 우리가 공감 의식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란과 침묵 사이에서/ 고급과 천박 사이에서/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상승과 하강 사이에서/ 좌익과 우익 사이에서/ 표류와 침전 사이에서/ 머리끝과 발가락 사이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서, 나는 운다.“ 안도현의 시 「사이」를 읽으며, 현재 여당과 야당 사이, 재벌과 노조 사이, 국가와 시민 사이가 얼마나 큰 간극으로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양극단 사이에서의 균형 잡힌 판단과 정책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긍휼이 여기는 공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감을 정치철학의 핵심으로 삼고, 대외정책에서부터 대법관 선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을 강조했다”고 한다. 오늘의 한국은 공감 결핍의 시대로 기억될 것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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