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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마 레드, 가장 어두운 이름
퍼마 레드, 가장 어두운 이름
  • 최승우
  • 승인 2023.01.31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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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라 맥파이 얼링 지음 |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474쪽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사랑의 양가성
열정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서사시

데브라 맥파이 얼링의 장편소설 『퍼마 레드, 가장 어두운 이름』은 미국 인디언 플랫헤드 자치 지구 퍼마 지역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다. 저자 데브라 맥파이 얼링은 아메리카 원주민 소설가이기도 한데, 작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에 대한 통렬한 시선으로 원주민 자치지구의 인물들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작가는, 첫 장편소설 『퍼마 레드, 가장 어두운 이름』으로 서부작가협회 최우수 장편소설 부문 스퍼상, 아메리칸 북 어워드, 메디슨 파이프 베어러상, 윌라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섬세한 문체와 아름다운 서술로 두 세계 사이에 끼인 인물이 겪는 불안과 동요, 저항과 좌절의 과정을 감각적인 문체와 깊은 사유로 탐구해 문학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루이스 화이트 엘크는, 1940년대 서부 몬태나의 가혹한 사회적·물리적 풍경 속에서 여동생과 할머니와 살아간다. 루이스는 원주민 자치지구의 바깥을 간절하게 꿈꾸며 성장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루이스에게 집착하는 세 명의 남자들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끈질기게 쫓기게 된다.

루이스의 할머니는 루이스에게 자신이 예전에 바람 피는 남편을 찾아다니던 얘기를 들려주며, “다시 자유로워지는 꿈을 꿨다고, 이 늙은 남자와 그의 옛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꿈을” 꿨다며 루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상대는 우리를 소유하지. 그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야. 바로 그렇게 그들은 우리를 가진단다.”

할머니의 이 말은, 이 소설을,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변화하고 저항하고 탈출하기를 원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과거를, 기억을, 애정을 갈망하기 때문이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물들이 자치지구의 안과 밖을 끊임없이 유동하는 이 소설은, 뱀이 출몰하고 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의 낮과 인적 없는 가파른 밤의 도로에서 폭력적인 상황과 격돌하는 파토스로 가득한 소설이다. 깊은 시간의 어둠을 헤쳐가는 루이스의 강인한 마음은 예민한 사유와 날것의 감각으로 안과 밖의 경계지대로서의 ‘퍼마’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삶을 모색하며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한 열정적인 인물, 루이스 화이트 엘크라는 여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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