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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더 미궁 만드는 IRB
연구윤리 더 미궁 만드는 IRB
  • 권수빈
  • 승인 2023.02.13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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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권수빈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동료 연구자의 제안으로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와 연구자 사이의 갈등과 문제 지점,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일이 있었다. 5명의 연구진이 152명의 연구자에게 설문지를 받았고, 27명의 연구자와 초점집단면접(FGI)을 실행했다. 전공 분야를 떠나 인문사회 분야의 많은 연구자가 연구 현장에서 연구윤리에 관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연구자들은 때로 그 어려움을 나눌 동료가 없다는 사실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알았다.

더욱이 학문후속세대의 자리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에 의한 곤란함은 IRB를 만나면서부터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연구에서 계속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처음 부딪히게 된 우리에게, IRB 심의를 거치면서 연구윤리를 ‘심사 항목’으로 만날 때 느끼는 이질감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과연 연구윤리를 지킨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곧잘 IRB 심의에서 (연구 현장을 만나기도 전에) 자신이 연구윤리에 관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연구 현장에서 성찰해야 할 연구윤리의 엄중함이 제도의 지나친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적 절차에 의해 그 가치가 퇴색되는 듯 보였다. IRB가 연구윤리 증진을 도와주어야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IRB 심의를 승인받기 위한 분투의 과정으로 인해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기가 꺾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의 절차를 거치기 위해 우왕좌왕하면서 연구 과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거나, 부정적 심의 결과로 연구를 포기하게 되는 등의 경험도 많았다. 때문에 정작 연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윤리적 이슈가 무엇인지, 연구 과정에서 연구윤리에 관한 고민과 성찰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한편 내가 이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느낀 지점 중 하나는, 이렇게 IRB와 연구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단지 IRB 심의 과정을 실제로 이행하는 것에서 비롯된 부대낌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IRB와 연구윤리라는 주제에 대해 털어놓은 연구자들의 어려움이나 답답함은 결국 연구자로서 어떻게 연구윤리를 고민할 수 있을까에 관한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의 연구윤리는 연구 부정행위나 이해 상충 문제만이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만날 수 있는 미묘한 사안들, 즉 무엇이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들에 관해서다. 여러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이 기꺼이 이 공동연구의 연구참여자로 응해준 이유 역시 그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질적연구자인 나의 경우도 그러하다. 내게 질적연구방법론은 연구자라는 직업을 택할 수 있게 된 계기인 만큼 매력적이지만 그런 동시에 곤란한 것이기도 했다. 현장을 오가며 무언가를 발견해내려는 내 시선과 면담에 임하는 나의 태도들, 모든 연구 과정의 기록 속에서 나는 가끔 연구자인 나의 무지막지함에 대해 생각했다. 연구자로서 나는 많은 순간 기울어진 위치에서 연구 현장을 만날 수밖에 없고, 연구자인 나의 그런 상황에 대한 고민도 역시 기만이라는 위험에 맞붙어 있다고 느꼈다. 연구자인 나 자신을 연구 대상 삼아 지역-청년 연구를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곤란함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이 재현의 윤리 문제로 수렴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구윤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IRB의 예로 보듯,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연구윤리에 대한 평가나 제도의 적용 문제와는 별개로 말이다. 나는 연구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연구윤리에 관한 딜레마에 가로막혔다는 감각을 경험할 때나 연구 현장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윤리적 갈등의 순간들에 처하게 될 때, 역설적으로 그 위기 속에서 연구한다는 감각을 벼려가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연구윤리에 대한 어려움이 연구 현장이라는 세계와 마주하는 연구자로서 어떻게 성찰하고 우리들의 자리를 긍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까지 논의가 깊이 있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건 아마 연구자로서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는 고민들이 공유되고 함께 이야기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공동연구가 이를 위한 역할의 하나를 수행했다고 믿고 싶고,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권수빈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교수
안동대에서 청년 담론과 미디어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지역/청년 담론과 공동체 문화/예술에 관심갖고 연구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청년세대 연구에 지역이라는 교차로 놓기」, 「공동체, 타자의 재현(불)가능성 너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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