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트리 스피박 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 교수는 ‘서발턴(Subaltern, 하위계층)’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그녀는 인도 여성의 순사(殉死)가 영국인과 인도 남성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예로 들었다. 인도 여성의 순사를 두고, 영국인은 인도 여성이 겪는 비참한 처지를 강변하는 논거로 삼았고, 인도 남성은 민족의 이름으로 죽음을 결심한 여성 영웅들을 치하하기 바빴다.
서발턴 여성의 ‘말하기’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되기에 이른다. ‘서구와 제3세계’ 내지는 ‘보편과 민족’이라는 대립 속에 제3세계 서발턴 여성들의 목소리는 형해화되어 재현된 탓에 우리들은 서발턴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스피박 교수의 문제 제기는 중국 여성의 재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쥘리아 크리스테바 프랑스 파리 제7대 명예교수야말로 가장 비근한 예이다. 그녀는 현대 페미니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그녀는 탈중심화된 주체를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의 저작 『중국 여성에 관하여』를 보면, 중국 여성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로 가득 차있다. 그녀는 한 챕터의 제목을 ‘공자, 여자를 잡아먹는 자’라고 붙이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고대 동양에 대한 외경심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중국 여성에 대한 크리스테바의 이해는 신식민주의적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교와 여성』의 저자인 리상 리사 로즌리 미국 하와이대 웨스트오아후캠퍼스 철학 교수는 그간의 페미니즘 담론에 서구 특권적인 태도가 존재해왔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초국가적인 페미니즘 담론에서 ‘중국 여성:피해자=유교:가해자’라는 등호가 지속되어 왔고, 그런 상황에서 중국 여성은 ‘제1세계’ 서구적 관점 아래 재현됐다. 그러므로 저자는 유교와 중국 여성에 대한 신식민주의적 관점을 잠시 제쳐두면서 역사 속 중국 여성의 주체적 모습을 발굴해내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유향의 『열녀전』에서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의 주체성을 발굴해내고, 여러 여훈서(女訓書)에서 여성 문해력을 옹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족 제도와 여성 정절에 대한 통념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남성 우선의 사회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고 저자는 남녀와 개념적 등가물로 간주된 ‘음양’이나 ‘내외’에 대한 통념적인(서구적인) 이해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의 성억압 문제가 유교와 무관하다고 얼버무리지는 않는다. 유교가 강조하는 효의 가족적 덕목, 성(姓)의 연속성, 조상 숭배 강조는 인(仁) 개념을 뒷받침하는 규제적 이상이었다. 부계의 후계자인 남성만이 특권을 누리게 되고, 그것이 조상숭배의 종교적 관행과 효의 미덕과 얽혀지므로, 결국 여성은 ‘기능적 도구’가 된다. 유교는 단순한 사상체계 뿐만 아니라 문화이자 종교로도 기능했다. 따라서 이 책은 『역경』이나 『논어』 등의 사상사적 자료를 위시해 유교가 본래 성평등을 주장했다는, 현대 한국 유교학계에서 횡행하는 ‘당혹스러운’ 레토릭을 전개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헌적이고 이론적인 근거를 끌어와 유교가 여성억압의 책임과 무관하다는 ‘호교론적 태도’, 그리고 전근대의 모든 성억압의 문제를 유교에 돌리는 ‘환원주의적 태도’ 그 모두를 지양해야 한다.
이 책이 중국 여성을 온전히 ‘말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중국 여성에 대한 피상적 재현을 넘어서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논쟁적’이다. 또 이 책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근거하면서도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이론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핵심적 주제가 된 이상, 유교가 21세기 담론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는 유교가 성평등을 위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지가 우선 검토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명한 점은, 유교에 정체성을 두면서도 여성 해방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이러한 염원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의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정환희
서원대 윤리교육과 교수